예술
1678 ~ 1741 · 베네치아(이탈리아) — 피에타 고아원에서 30여 년
소리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그가 살았던 시대
붉은 머리 때문에 「붉은 머리 사제」로 불렸다. 실제로 서품을 받았으나 천식을 이유로 미사를 거의 집전하지 않았다. 스물다섯에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의 음악 교사가 되어 30여 년을 일했다.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거두어 음악을 가르치던 곳인데, 그 연주 수준이 유럽에 소문났고 관객은 격자 너머에서 소리만 들었다. 그가 쏟아낸 500곡 넘는 협주곡 대부분이 이 소녀들의 기량에 맞춰 쓰인 것이다. 말년에는 유행이 바뀌어 베네치아에서 밀려났고, 빈으로 가 새 후원을 구하려 했으나 도착 직후 황제가 죽었다. 이듬해 빈민 묘지에 묻혔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봄이 왔다. 새들이 즐거운 노래로 봄을 맞이한다.」 — 『사계』 악보에 함께 인쇄된 소네트
악보에 시가 함께 인쇄되어 있고, 음악이 그 시의 각 행을 그대로 흉내 낸다. 여백에는 「잠자는 염소지기」 「짖는 개」 같은 지시까지 적혀 있다. 소리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것이 뒤에 「표제음악」이라 불리게 되는 발상의 아주 이른 예다. 음악이 무엇을 그려도 되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야 가장 깊은가 — 이 물음은 19세기에 베를리오즈와 브람스 진영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논쟁이 된다. 비발디는 그 논쟁이 생기기 100년 전에 이미 한쪽 편을 실물로 만들어 두었다.
삶이 만든 철학
그의 진짜 업적은 형식에 있다. 그는 협주곡을 「빠르게 – 느리게 – 빠르게」 세 악장으로 굳혔고, 합주단 전체가 되풀이하는 부분(리토르넬로)과 독주자가 혼자 나서는 부분을 번갈아 놓는 구조를 표준으로 만들었다. 바흐가 그의 협주곡을 여러 곡 건반용으로 옮겨 적으며 이 방식을 배웠다.
그런데 그는 죽은 뒤 200년 가까이 잊혔다. 192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대량의 자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되살아났고, 지금은 아마 클래식 전체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작곡가가 되었다. 잊히는 것과 되살아나는 것이 작품의 가치와 별개라는 사실을, 바흐와 나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음악이 무언가를 그려도 되는가?
- 되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나머지가 들리는가?
- 잊히는 것과 좋은 것은 얼마나 상관있는가?
되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나머지가 들린다면, 당신의 하루에는 무엇이 리토르넬로입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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