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 초상
이성의 시대

프란츠 슈베르트

예술
1797 ~ 1828 · 빈(오스트리아) — 자기 피아노 없이 친구 집을 옮겨 다니며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계속 만든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학교 교사의 아들로 빈 변두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뜻에 따라 교사가 되어 몇 해 동안 어린아이들을 가르쳤으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 뒤로 그는 직업이 없었다. 궁정에도 교회에도 자리를 얻지 못했고, 자기 피아노조차 없어서 친구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대신 그에게는 친구들이 있었다 — 시인과 화가와 법률가 몇이 모여 그의 새 곡을 듣는 모임을 열었고, 「슈베르티아데」라 불렸다. 그의 음악이 살롱 규모인 이유가 이것이다. 생전에 그의 공개 연주회는 딱 한 번 열렸다. 서른한 살에 죽었고, 죽기 전 마지막 해에 「겨울 나그네」와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을 썼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나는 이 노래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좋다.」 — 「겨울 나그네」를 처음 들려준 뒤 친구들에게, 1827년
친구들은 당황했다고 전한다. 너무 어둡다는 것이었다. 스물네 편의 시로 이루어진 이 연가곡은 실연한 남자가 겨울에 마을을 떠나 걸어가며 부르는 노래이고, 줄거리랄 것이 없다. 그냥 계속 걷는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죽기 1년 전이고, 이미 병이 깊었다. 남들이 어둡다고 하는 것을 자기가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어둠이 자기 것이어야 한다. 음악적으로 그가 바꾼 것은 반주의 지위다. 그 전까지 가곡의 피아노는 노래를 받쳐 주는 역할이었다. 「겨울 나그네」 첫 곡에서 피아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리듬으로 걷는다. 가사가 말하지 않는 것을 반주가 말한 것이다.

삶이 만든 철학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은 숫자만으로도 설명된다. 서른한 살에 죽으면서 가곡을 600곡 넘게 남겼다. 열일곱 살에 「실 잣는 그레트헨」을 썼고, 열여덟 살 어느 하루에는 여덟 곡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와 피아노와 목소리를 대등한 셋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왕」에서 피아노는 말이 달리는 소리를 내고, 「실 잣는 그레트헨」에서는 물레가 도는 소리를 낸다. 그러다 그레트헨이 그 사람의 입맞춤을 떠올리는 순간 물레가 멈춘다. 그의 가장 큰 재주는 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같은 가락이 장조에서 단조로 넘어가면서 색이 바뀐다. 「보리수」에서 나무 아래 단꿈을 꾸던 기억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대목이 그렇다. 기억과 현실, 희망과 체념을 음 하나 차이로 구분해 그렸다. 그는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횃불을 들었고, 그 1년 뒤 베토벤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대로 묻혔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계속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남들이 어둡다고 하는 것을 자기가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 가사가 말하지 않는 것을 반주가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계속 만들어 온 것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 클래식 입문 루트에서 이 사람의 곡 듣기
이 카드에 나온 말
🗺 이성의 시대 지도에서 이 인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