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초상
현대의 사유

칼 포퍼

과학철학
1902 ~ 1994 · 빈 → 런던
틀릴 수 있어야 과학이다 — 확인이 아니라 반증이 기준이라고 말한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1919년의 빈에서 열일곱 살 포퍼는 세 가지를 동시에 보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자기 이론으로 설명해 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그랬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 사람도, 빠뜨린 사람도 정신분석은 똑같이 설명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에딩턴은 일식을 관측하러 떠났다 —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예측한 별빛의 휘어짐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이론은 끝이라는 조건을 걸고서. 포퍼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아인슈타인이 옳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자기 이론이 죽을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내걸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어떤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관찰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면, 그 이론은 과학적이지 않다. 반박 불가능성은 이론의 미덕이 아니라 결함이다." — 『추측과 논박』
결국 "무엇이든 설명하는 이론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우리는 보통 이론이 강하다는 것을 설명력이 넓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포퍼는 그것을 뒤집었다. 이 이론이 틀렸다면 무엇이 관찰되어야 하는가 —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이론이라는 것. 그래서 좋은 이론은 많은 것을 허용하는 이론이 아니라 많은 것을 금지하는 이론이다. 금지된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그 이론은 죽는다. 죽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 미덕이다.
"우리의 지식은 유한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무지는 반드시 무한하다." — 『객관적 지식』
흰 백조를 백만 마리 보아도 모든 백조가 희다는 명제는 증명되지 않는다. 검은 백조 한 마리면 반증된다. 확인은 아무리 쌓아도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반박은 한 번으로 끝난다 — 흄이 제기한 귀납의 문제에 포퍼가 내놓은 우회로가 이것이다. 귀납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과학은 어떻게 나아가는가. 포퍼의 답은 과학이 애초에 귀납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담하게 추측하고, 가혹하게 시험하고, 살아남은 것을 잠정적으로 쓴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옳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삶이 만든 철학

포퍼는 빈에서 태어난 유대계였고 1937년 나치를 피해 뉴질랜드로 갔다. 전쟁 중 그곳에서 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그는 자신의 전쟁 수행이라고 불렀다. 이 책에서 그는 반증 가능성의 논리를 정치로 옮긴다 — 좋은 정치 체제란 훌륭한 통치자를 뽑는 체제가 아니라 나쁜 통치자를 피 흘리지 않고 갈아치울 수 있는 체제라는 것. 이론을 죽일 수 있어야 과학이듯, 정부를 죽일 수 있어야 열린사회다. 같은 구조가 두 번 쓰였다. 반증주의는 곧바로 반박에 부딪혔다. 실제 과학자들은 예측이 빗나가도 이론을 버리지 않는다. 보조 가설을 덧붙이거나 관측 장비를 의심하거나 조건을 다시 따진다 —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천왕성 궤도가 예측과 어긋났을 때 뉴턴 역학을 버리지 않고 미지의 행성을 가정한 사람들이 해왕성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논점을 밀어붙인 사람이 토머스 쿤이었고, 두 사람의 논쟁은 20세기 과학철학의 축이 된다. 포퍼가 남긴 것은 완결된 기준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자기 생각이 틀렸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리에 스스로를 놓아 두는 것. 이 아틀라스가 실린 글마다 질문으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결론은 닫히지만 질문은 열려 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무엇이든 설명하는 이론은 강한 이론인가, 빈 이론인가?
  • 내 생각이 틀렸다면, 무엇이 관찰되어야 하는가?
  • 나쁜 통치자를 갈아치울 수 있는가 — 좋은 통치자를 뽑는 것보다 그것이 먼저인가?
당신의 믿음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확신입니까 아니면 시험을 피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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