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811 ~ 1886 · 바이마르(독일) — 순회를 그만두고 지휘와 후학 양성에 전념한 곳
어려워 보이는 것과 좋은 것은 얼마나 자주 같은가
그가 살았던 시대
헝가리에서 에스테르하지 가문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 하이든이 일하던 바로 그 집안이다. 열한 살에 빈으로 가서 살리에리에게 배웠다. 결정적 계기는 스무 살 때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본 것이었다.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몇 년을 미친 듯이 연습한 뒤, 유럽 전역을 도는 순회 연주자가 되어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다. 연주회를 열면 관객이 실신하고 장갑과 손수건을 무대로 던졌고, 시인 하이네가 이 열광을 「리스트 열병」이라 불렀다. 서른여섯에 순회를 그만두고 바이마르 궁정 악장으로 들어가 지휘와 작곡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말년에는 로마에서 하급 성직을 받아 「리스트 신부」로 불렸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사랑의 꿈」 3번의 원가사, 프라일리그라트의 시
이 곡은 원래 가곡이었고 나중에 피아노용으로 옮겨졌다. 시의 다음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 무덤 앞에서 슬퍼할 시간이 오기 전에.
기교의 화신으로 알려진 사람이 가장 널리 사랑받은 곡에서 한 일은 기교를 거의 쓰지 않은 것이다. 「라 캄파넬라」가 손을 건반 끝에서 끝까지 뛰어다니게 만든다면, 이 곡은 가락 하나가 조용히 흐를 뿐이다.
두 곡을 나란히 들어 두면 좋다. 어려워 보이는 것과 좋은 것이 언제 같고 언제 다른지 — 19세기 내내 브람스 쪽과 리스트 쪽이 다투던 문제가 한 사람의 작품 목록 안에 이미 들어 있다.
삶이 만든 철학
그가 만든 것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곡이 아니라 형식이다. 오늘날의 독주회를 그가 만들었다.
그전까지 연주회는 여러 연주자가 나와 이것저것 섞어 하는 잡탕이었다. 리스트는 혼자 무대에 나와 전곡을 연주했고, 악보 없이 외워서 쳤으며, 피아노를 옆으로 돌려 관객이 자기 옆얼굴과 손을 볼 수 있게 놓았다. 「리사이틀」이라는 말도 그의 연주회에서 처음 쓰였다.
그는 남을 돕는 데 유별났다. 바그너가 빚과 수배에 쫓길 때 돈을 대고 「로엔그린」을 초연시켜 준 사람이 리스트다. 훗날 바그너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한다. 그는 또 녹음이 없던 시대에 베토벤 교향곡 아홉 곡을 전부 피아노 한 대로 옮겨 적었다 — 그 편곡이 유럽 곳곳의 살롱에서 베토벤을 들려주는 통로였다.
「교향시」라는 형식도 그가 만들었다. 문학이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을 한 악장의 관현악곡으로 쓰는 것이다. 베를리오즈가 시작한 표제음악을 그가 밀고 나갔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시벨리우스가 이어받았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어려워 보이는 것과 좋은 것은 얼마나 자주 같은가?
- 기교 자체가 볼거리인 예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 남의 것을 옮겨 퍼뜨리는 일도 창작인가?
어려워 보이는 것과 좋은 것은 얼마나 자주 같은 것입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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