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732 ~ 1809 · 에스테르하자(헝가리) — 궁정 악장으로 30년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독창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
수레바퀴 만드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여섯 살에 집을 떠나 친척에게 맡겨졌고, 여덟 살에 빈 성 슈테판 대성당 성가대에 들어갔다. 변성기가 와서 열일곱에 쫓겨난 뒤 몇 해를 거리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하며 굶주렸다. 스물아홉에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바뀌는데, 계약서에는 제복을 입고 식사 전 정해진 자리에 대기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 신분은 하인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전속 악단을 거느리고 매주 새 곡을 써서 바로 연주해 보고 고칠 수 있었다. 후원자가 죽고 계약에서 풀려난 뒤 예순에 런던으로 두 차례 건너가 큰 성공을 거뒀고, 옥스퍼드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세상과 떨어져 있었기에 나는 독창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전기 작가에게 한 말로 전한다
이 문장은 고립을 조건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30년 가까이 헝가리 시골 궁정에 매여 있었다. 빈의 유행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다른 작곡가의 신작을 들을 기회도 적었다.
보통 그것은 결핍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것이 있었다 — 자기 마음대로 실험해 볼 수 있는 상설 악단과, 매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 남의 것을 못 보는 대신 자기 것을 계속 시험할 수 있었다.
교향곡 106곡과 현악사중주 68곡이 그 30년의 산물이다. 그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처음 만들어서가 아니라, 같은 형식을 백 번 넘게 다시 지어 보며 표준을 다듬어 냈기 때문이다. 반복이 가능한 자리가 천재보다 먼저였다.
삶이 만든 철학
그가 남긴 일화 하나가 그의 처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고별 교향곡」이다.
1772년, 후원자가 여름 별궁에 머무는 기간이 자꾸 길어져 단원들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든은 직접 항의하는 대신 곡을 썼다. 마지막 악장에서 연주자가 한 사람씩 자기 파트를 끝내고 촛불을 끄고 나간다. 결국 바이올린 두 대만 남아 조용히 끝난다. 후원자는 뜻을 알아채고 이튿날 궁정을 떠나게 했다고 전한다.
음악으로 낸 사직 청원인 셈이다. 하인 신분이던 사람이 자기 일의 언어로 요구를 전달했고, 그것이 통했다. 단원들이 그를 「파파 하이든」이라 부른 것은 성질이 좋아서만이 아니었다.
모차르트와는 스물넷 차이인데도 서로 존경했다. 모차르트는 그에게 현악사중주 여섯 곡을 헌정했고,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에게 당신 아들이 자기가 아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고 말했다. 베토벤도 그에게 배웠다.
그가 던진 질문들
- 고립은 결핍인가 조건인가?
- 같은 것을 백 번 다시 만드는 일에서 무엇이 생겨나는가?
- 불만을 말이 아니라 자기 일로 전달할 수 있는가?
불만을 말 대신 자기 일로 표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상대가 알아들었습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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