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BC 280년경 ~ BC 233 · 한나라(신정)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말고 제도를 설계하라 — 맹자·순자 다음에 온 세 번째 답
그가 살았던 시대
전국시대 말기, 일곱 나라가 서로를 삼키던 마지막 국면이다. 한비는 그중 가장 작고 가장 위태로운 한나라의 공자로 태어났다. 유가는 옛 성왕의 덕으로 돌아가자 했고 묵가는 겸애를 말했지만, 그가 보기에 그 말들로 지켜진 나라는 없었다. 그는 순자 문하에서 배웠다 —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예로 교화해야 한다는 스승의 전제를 받아들이되, 결론을 바꿨다. 교화는 느리고 불확실하니, 기대야 할 것은 예가 아니라 법이라는 것. 말을 더듬어 유세에 서툴렀던 그는 대신 썼고, 그 글이 그를 살리고 또 죽였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성인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선해지기를 기대지 않고, 그들이 그르게 행할 수 없는 조건을 쓴다. …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다수에게 통하는 방법을 쓸 뿐, 소수에게만 통하는 방법에 기대지 않는다." — 『한비자』 현학편
결국 좋은 사람 열 명을 기다리지 말고, 보통 사람 만 명이 그르게 행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라는 얘기다. 스스로 곧은 화살대나 저절로 둥근 바퀴감은 백 세대를 기다려도 드물다 — 그러니 도지개와 굽힘틀을 만드는 것이 장인의 일이라는 것이 그의 비유다.
통치를 통치자의 인격에서 떼어내 제도의 설계 문제로 옮긴 자리다. 놀랍게도 이 발상은 이천 년 뒤 서양 헌정주의가 도착한 자리와 겹친다 — 사람이 아니라 법의 지배, 선의가 아니라 견제의 구조. 다만 방향이 반대다. 그들은 권력을 묶으려고 법을 설계했고, 한비는 권력이 백성을 다루도록 법을 설계했다.
"송나라 농부가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혀 죽는 것을 보고,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를 기다렸다.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고 그는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선왕의 정치로 지금의 백성을 다스리려는 것은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는 일이다." — 『한비자』 오두편
수주대토 고사의 출처가 바로 이 대목이다. 옛날에 통했던 방법이 지금도 통하리라는 믿음을 겨눈 것이다 — 인구가 적고 물자가 남던 시절의 덕치는 그 시절의 조건이 만든 것이지, 시대를 초월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
요즘 말로 하면, 과거의 성공은 그 성공의 조건과 함께 온다는 얘기다. 조건이 바뀌었는데 방법을 지키는 것은 충실함이 아니라 그루터기 지키기다. 성왕의 도를 영원한 표준으로 삼는 유가 전체를 향한 정면 공격이었다.
삶이 만든 철학
그의 죽음은 그의 이론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왔다. 조국 한나라는 그의 상소를 거듭 물리쳤다. 그런데 서쪽 진나라의 젊은 왕 — 뒷날의 진시황 — 이 그의 글을 읽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사람을 만나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BC 233년 한비는 사신으로 진에 갔고, 왕은 기뻐했으나 등용을 미뤘다. 그때 진의 재상이 순자 문하의 동문 이사였다. 이사는 한비의 재능이 자기 자리를 위협한다 여겨 그를 참소해 옥에 가뒀고, 독을 보냈다. 왕이 뒤늦게 후회하며 사면을 보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군주에게 유세하는 일의 위험을 가장 정밀하게 분석한 사람 — 『한비자』 세난편이 바로 그 글이다 — 이 유세하러 간 길에서 궁정 음모로 죽었다. 이익 앞에서 사람을 믿지 말라던 이론가가 동문의 이익 계산에 죽은 것이다.
그리고 12년 뒤 진은 그의 방법대로 천하를 통일했다. 법과 술과 세 — 공개된 규칙, 신하를 다루는 기술, 자리에서 나오는 힘. 상과 벌이라는 두 자루(이병)만 군주가 쥐면 나라가 굴러간다는 설계다. 통일 제국은 그러나 15년 만에 무너졌다. 법은 있었으나 법이 군주 자신을 묶지는 않았기에, 두 번째 황제의 폭정을 멈출 장치가 설계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이천 년의 동아시아 통치는 겉은 유가, 속은 법가라는 말로 자주 요약된다 — 덕을 말하며 법으로 다스리는 이중 구조. 그의 이름은 폭정의 대명사로 남았지만,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제도 설계라는 질문 자체는 사라진 적이 없다. 오늘의 헌법과 감사 제도와 이해충돌 규정이 전부 그 질문 위에 서 있다 — 다만 이번에는 칼끝이 권력 자신을 향하도록 뒤집혀서.
그가 던진 질문들
- 좋은 사람을 기다릴 것인가, 보통 사람이 그르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 것인가?
- 과거에 통했던 방법은 왜 지금 통하지 않는가?
- 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법을 만드는 자는 누가 다스리는가?
당신이 속한 조직은 사람의 선의로 굴러갑니까, 구조로 굴러갑니까 — 그리고 선의가 사라지는 날에도 굴러갈까요?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2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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