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초상
이성의 시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예술
1685 ~ 1759 · 런던(영국) — 브룩 스트리트에서 36년
가장 형편이 나빴을 때 만든 것이 그를 대표하게 되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

외과의사의 아들로 할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음악을 반대해 다락에 클라비코드를 숨겨 놓고 몰래 연습했다고 전한다. 법학을 공부하다 그만두고 함부르크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들어갔고,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배운 뒤 런던으로 건너가 귀화했다. 그는 사업가였다 — 극장을 빌리고 스타 가수를 고용하고 표를 팔았다. 두 명의 스타 소프라노가 무대 위에서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고, 경쟁 오페라단이 관객을 나눠 가지자 이탈리아 오페라 사업 자체가 무너졌다. 그때 방향을 튼 것이 영어 오라토리오였다. 말년에 눈이 멀었고, 실명한 채로도 오르간을 연주하며 「메시아」 공연을 이어 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메시아」 자필 악보 — 1741년 8월 22일 시작, 9월 14일 완성
24일이다. 3부 53곡, 354쪽짜리 대작을 그 사이에 다 썼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의 처지다. 오페라 사업이 무너지고 뇌졸중 후유증까지 겹쳐 파산 직전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더블린의 자선 음악회가 새 작품을 의뢰했고, 후원자 찰스 제넨스가 성경 구절을 엮은 대본을 건넸다. 하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식사도 잊은 채 울면서 악보를 써 내려갔다. 초연은 이듬해 4월 13일 더블린에서였다. 표가 매진되어 부인들에게는 치마 버팀살을, 신사들에게는 칼을 두고 오게 했다. 이후 그는 이 곡을 병원과 고아원의 자선 공연에 반복해 내놓았다.

삶이 만든 철학

한국과 일본에서 그를 「음악의 어머니」라 부른다. 서양에서는 쓰지 않는 별명이고, 남성 작곡가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어색하다는 지적이 국내에서도 계속 나왔다. 바흐에게 아버지를 붙였으니 같은 해에 태어난 그에게 짝을 맞춘 것에 가깝다. 그런데 그 짝이 만들어진 이유는 정확하다. 두 사람은 반대였다. 바흐는 독일 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교회에 고용되어 살았으며 종교음악이 중심이다. 헨델은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으로 귀화했고, 극장을 직접 경영하며 표를 팔았고,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로 대중을 상대했다. 엄격함과 화려함, 안으로 파는 사람과 밖으로 펼치는 사람. 두 사람은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헨델이 고향 할레에 들를 때마다 바흐가 만나러 갔으나 번번이 엇갈렸다고 전한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말년에 눈이 멀었고, 같은 영국인 의사 존 테일러에게 수술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 다만 헨델 쪽은 증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가장 형편이 나빴을 때 만든 것이 왜 대표작이 되는가?
  • 팔아서 먹고사는 예술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예술인가?
가장 형편이 나빴던 때에 만든 것이, 나중에 당신을 대표하게 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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