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드뷔시 초상
현대의 사유

클로드 드뷔시

예술
1862 ~ 1918 · 파리(프랑스) — 1889년 만국박람회에서 가믈란을 들은 곳
음악이 반드시 어딘가로 향할 필요는 없다

그가 살았던 시대

도자기 가게를 하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정규 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열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열한 해를 다녔다. 화성학 시험에서 규칙을 어겨 낮은 점수를 받곤 했는데, 교수가 무슨 규칙을 따르느냐고 묻자 「내 즐거움」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여름마다 차이콥스키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의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러시아 음악을 들었고, 무소륵스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사생활은 어지러웠다 — 그가 떠난 여성 둘이 각각 총으로 자기 가슴을 쐈고(둘 다 살아남았다), 파리 음악계의 여러 친구가 그와 절교했다. 대장암으로 1918년, 파리가 독일군의 포격을 받는 중에 죽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자바 음악에 비하면 우리의 으뜸음과 딸림음은 공허한 유령처럼 보인다.」 — 지인에게 보낸 편지, 1895년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자바관에서 가믈란 연주를 들은 뒤에 쓴 말이다. 그가 받은 충격은 「이국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서양 음악은 「긴장이 생기면 해결된다」는 약속 위에서 굴러간다. 불안한 화음이 나오면 안정된 화음으로 풀리기를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가 곡을 앞으로 끌고 간다. 목적지가 있는 음악이다. 가믈란은 그렇지 않다. 큰 징이 한 바퀴를 알리고 그 안에서 여러 층이 각자의 속도로 돌아간다. 끝나기 때문에 끝나는 것이지 도착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는 음악이 반드시 어딘가로 향할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다만 이 만남을 미담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해 박람회는 실제 자바 사람들을 데려다 「마을」을 재현해 전시한 식민지 박람회이기도 했고, 연주한 사람들의 이름은 남지 않았다.

삶이 만든 철학

그는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로 불리지만 정작 이 말을 싫어했다. 미술 용어를 음악에 갖다 붙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가 실제로 한 일은 화성의 규칙을 느슨하게 푼 것이다. 긴장을 만들어 놓고 해결하지 않거나, 해결이 필요 없는 화음을 나란히 늘어놓았다. 반음이 없는 온음음계와 다섯 음만 쓰는 5음음계를 즐겨 썼는데, 반음이 없으면 「여기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어디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느낌을 준다. 이 발견이 20세기 음악의 문을 열었다. 그의 뒤에서 쇤베르크는 「집」에 해당하는 음 자체를 없앴고, 재즈와 영화음악도 그의 화성에서 많은 것을 가져갔다. 그는 서양 바깥의 소리에서 배운 사람이고, 동시에 그 배움이 불평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안고 있다. 진지하게 배운 것과 불평등한 자리에서 가져온 것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그를 읽을 때 남는 질문은 그 둘을 어떻게 같이 말할 것인가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음악이 반드시 어딘가로 향해야 하는가?
  • 남의 음악에서 배운 것과 가져다 쓴 것은 어디서 갈리는가?
  • 규칙이 느슨해지면 예술은 자유로워지는가?
반드시 어딘가에 도착해야 좋은 것이라면, 머무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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