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쇼팽 초상
이성의 시대

프레데리크 쇼팽

예술
1810 ~ 1849 · 파리(프랑스) — 고국을 다시 보지 못한 18년
돌아갈 수 없는 곳의 리듬을 평생 썼다

그가 살았던 시대

바르샤바 근교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스무 살에 빈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그가 폴란드를 떠난 직후 바르샤바에서 러시아에 맞선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는 진압됐고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파리에 정착해 남은 18년을 그곳에서 살며 귀족 자제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수업료가 비쌌고 사교계에서 인기가 있었으며, 작가 조르주 상드와 10년 가까이 함께 지냈다. 평생 공개 연주회는 서른 번 남짓이었고 큰 홀을 싫어했다. 결핵으로 서른아홉에 죽었다. 유언에 따라 심장은 폴란드로 옮겨져 바르샤바 성십자가 성당 기둥 안에 안치되어 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연주회에 나가기 전에 나는 바흐를 친다. 다른 것은 치지 않는다.」 — 제자들이 전한 말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손에 쥔 것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바흐를 먼저 시켰다. 까닭이 있다. 쇼팽의 음악은 즉흥적으로 들리지만 밑에 아주 단단한 구조가 있다. 왼손이 규칙적으로 화음을 깔고 오른손이 그 위에서 자유롭게 흔들린다 — 이 흔들림을 「루바토」라 하고, 훔친 시간이라는 뜻이다. 왼손이 흔들리면 훔칠 것이 없어진다. 즉 그의 자유는 규칙 위에서만 성립한다. 바로크의 엄격한 저음이 없었다면 낭만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 아틀라스의 「클래식 입문」 루트가 바흐에서 쇼팽으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이 만든 철학

그는 거의 피아노만 썼다. 교향곡도 오페라도 쓰지 않았다. 그의 곡은 대개 3분에서 7분 사이다 — 논문이 아니라 시 한 편의 길이다. 크게 벌여 놓고 논증하는 대신 짧게 한 정서를 붙잡고 끝낸다. 그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피아노로 노래하게 만든 것이다. 피아노는 소리를 낸 뒤 곧 사그라드는 악기라 가락을 길게 늘이기 어렵다. 그는 오른손 가락을 성악처럼 다루고 왼손이 그 아래를 넓게 받치게 해서 그 한계를 넘었다. 벨칸토 오페라를 열심히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는 돌아갈 수 없는 나라의 춤곡을 평생 썼다. 마주르카 오십여 곡, 폴로네즈 십여 곡. 춤추기 위한 곡이 아니라 그 리듬을 빌려 온 감상용 곡이다. 「혁명 에튀드」가 봉기 소식을 듣고 쓴 것이라는 이야기는 확실한 사료로 뒷받침되지 않고, 제목도 그가 붙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폴란드의 리듬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악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자유는 규칙 위에서만 성립하는가?
  • 짧은 것이 긴 것보다 깊을 수 있는가?
  • 돌아갈 수 없는 곳을 우리는 무엇으로 간직하는가?
돌아갈 수 없는 곳의 리듬을 당신은 무엇으로 간직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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