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833 ~ 1897 · 빈(오스트리아) — 교향곡 1번을 21년 미룬 끝에 낸 곳
뒤에서 거인의 발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쓰겠는가
그가 살았던 시대
함부르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술집 악사였고, 소년 브람스도 항구의 술집에서 피아노를 쳐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졌으나 본인이 뒤에 만들어 낸 것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다. 스무 살에 슈만 부부를 만난 것이 인생을 정했다. 슈만은 잡지에 그를 시대의 구원자로 소개했고, 2년 뒤 정신병으로 무너져 요양원에서 죽었다. 브람스는 남겨진 클라라 슈만과 일곱 아이를 돌봤고, 그와의 관계는 평생 이어졌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클라라가 죽은 이듬해에 죽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의 상당수는 서로 합의해 없앴다. 성격은 무뚝뚝하고 자기 비판이 심해, 마음에 안 드는 원고를 태워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뒤에서 거인의 발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교향곡을 쓰겠는가.」 —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한 말로 전한다
거인은 베토벤이다. 스무 살에 슈만이 그를 시대의 구원자로 선언한 뒤, 사람들은 그의 첫 교향곡을 기다렸다. 그는 그것을 21년 미뤘다. 마흔셋에야 교향곡 1번을 내놓았고, 그동안 몇 번이나 쓰다 버렸다.
이 문장은 영향이라는 것의 무게를 말한다. 앞선 사람이 너무 크면 뒤에 오는 사람은 그를 흉내 내거나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브람스는 21년 동안 세 번째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곡이 나오자 지휘자 뷜로가 「베토벤 10번」이라 불렀다. 4악장의 주제가 베토벤 9번의 「환희의 송가」와 닮았다는 지적에 브람스는 그건 바보도 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흉내가 아니라 알고 한 응답이라는 뜻이다.
삶이 만든 철학
19세기 음악계는 둘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은 리스트와 바그너로, 음악이 시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쪽은 브람스와 평론가 한슬리크로, 음악은 오직 음의 움직임 자체라고 맞섰다.
브람스의 교향곡에 이름이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냥 1번, 2번이다. 「환상」이나 「영웅」 같은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무엇을 상상할지 미리 정해 주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런데 이 진영 다툼이 그를 딱딱한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장가」를 쓴 사람이고, 집시 악단에게 들은 선율로 「헝가리 무곡」을 편곡해 생전에 가장 잘 팔린 악보를 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완성한 「독일 레퀴엠」에서는 라틴어 전례문 대신 독일어 성경 구절을 직접 골라 엮었고, 죽은 자의 심판이 아니라 남은 자의 위로를 다뤘다.
그리고 그는 무명의 드보르자크를 발굴한 사람이다. 장학금 심사위원으로 그의 악보를 보고 감탄해 자기 출판업자에게 소개했고, 두 사람은 평생 친구로 지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앞선 사람이 너무 크면 뒤에 오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음악은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야 하는가?
- 남이 걸어 준 기대가 사람을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
남이 기대를 걸어 준 일이 오히려 당신을 못 움직이게 한 적이 있습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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