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초상
이성의 시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예술
1685 ~ 1750 · 라이프치히(독일) — 성 토마스 교회에서 27년
작은 재료 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가 살았던 시대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형 집에서 자랐다. 스무 살 무렵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으려 400km를 걸어갔다가 4주 휴가를 내고 넉 달 만에 돌아와 문책당했고, 스물아홉에는 궁정을 그만두겠다고 고집부리다 4주 구금됐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악장 자리에는 3순위로 뽑혔다 — 1순위 텔레만과 2순위 그라우프너가 거절한 뒤였고, 시의회 기록에는 최선을 얻을 수 없으니 중간치로 만족해야겠다는 취지의 말이 남아 있다. 그 「중간치」가 27년간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매주 예배용 칸타타를 납품했다. 두 번 결혼해 스무 명의 자녀를 두었고 절반이 어려서 죽었다. 생전에는 작곡가보다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배우려는 젊은이들의 유익과 이미 익숙한 이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표지 헌사
스물네 개 조성 전부에 전주곡과 푸가를 하나씩 붙인 곡집이다. 모든 조가 다 쓸 만하다는 것을 실물로 증명하려고 만들었다. 왜 증명이 필요했는가. 5도를 열두 번 쌓으면 처음 자리로 정확히 돌아오지 않는다. 피타고라스가 남긴 미세한 어긋남이다. 옛 조율법은 이 오차를 한군데 몰아넣었고, 그러면 그 근처의 조는 아예 못 쓴다. 오차를 여러 곳에 나눠 뿌리면 완벽하게 순수한 조는 없어지지만 못 쓸 조도 없어진다. 이 곡집 이후 작곡가들은 조를 자유롭게 옮겨 다니게 되었다. 어디에도 완벽하지 않은 대신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쪽을 고른 것 — 이것이 타협인지 발명인지는 지금도 물어볼 만하다.

삶이 만든 철학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행이다. 서양에서는 쓰지 않는 호칭이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사실은 정확하다. 그는 이탈리아의 협주곡, 프랑스의 춤곡, 독일의 대위법을 한 사람 안에서 합쳤고, 그 결과가 뒤 세대의 교과서가 되었다.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쇼팽도 『평균율』로 배웠다. 그런데 그는 죽을 무렵 이미 낡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1737년 한 평론가가 그의 음악을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혼란스럽다고 공개 비판했고, 유행은 그의 아들 세대의 가볍고 선율이 또렷한 양식으로 넘어가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바흐」라고 하면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을 뜻했다. 되살린 것은 1829년, 스무 살의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베를린에서 지휘하면서다. 그가 죽은 지 79년 만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동안 매주 하나씩 만들어 둔 것이 80년 뒤에 열렸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작은 재료 하나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 어디에도 완벽하지 않은 대신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쪽을 고르는 것은 타협인가 발명인가?
  •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동안에도 계속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동안 매주 하나씩 만들어 두는 일을, 당신은 무엇에서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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