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쉬클로프스키 초상
현대의 사유

빅토르 쉬클로프스키

예술
1893 ~ 1984 (「기법으로서의 예술」 1917) ·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익숙해지면 우리는 보지 않고 알아보기만 한다 — 예술의 일은 다시 어렵게 만드는 것

그가 살았던 시대

1917년의 페트로그라드. 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스물넷의 쉬클로프스키는 젊은 언어학자와 문학연구자들과 함께 오포야즈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때까지 문학 연구란 작가의 생애와 시대 배경과 사상을 다루는 일이었다. 이들은 그것을 걷어내고 텍스트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만 보자고 했고, 그래서 형식주의라 불렸다. 쉬클로프스키는 책상에만 있던 사람이 아니다. 1차대전에 장갑차 부대로 참전했고, 혁명기의 정치에 얽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적도 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예술이 존재하는 것은 삶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다. 돌을 돌답게 만들기 위해서." — 「기법으로서의 예술」(1917)
결국 우리가 익숙한 것을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매일 지나는 골목을 그려보라면 못 그린다. 지나가긴 했지만 보지는 않았으니까. 그는 이것을 지각의 자동화라고 불렀고, 톨스토이의 일기를 예로 들었다 — 방을 치우다가 소파를 닦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닦고도 기억이 없다면 그 시간은 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낯설게하기는 그 자동화를 깨는 기법이다. 톨스토이는 오페라를 묘사할 때 그것이 오페라인 줄 모르는 사람의 눈을 빌렸고, 사유재산을 다룰 때는 말(馬)의 시점으로 썼다. 내 땅, 내 말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제야 들린다.
"예술의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만들고 형식을 어렵게 만들어, 지각의 어려움과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 「기법으로서의 예술」
읽기 쉬운 글이 언제나 좋은 글은 아니라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예술에서는 걸리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 시가 줄을 이상한 자리에서 끊고, 영화가 편한 각도를 피하고, 소설이 시간 순서를 뒤섞는 이유다. 다만 오해하기 쉽다. 어렵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통과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 어려움만 남고 보이는 것이 없으면 그건 그냥 불친절한 글이다.

삶이 만든 철학

형식주의의 운명이 그의 생애를 갈랐다. 1920년대 후반부터 소비에트에서는 예술이 계급투쟁에 복무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졌고, 형식만 본다는 이 학파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것이 됐다. 1930년 쉬클로프스키는 「과학적 오류의 기념비」라는 글을 발표해 자기 이론을 스스로 부정했다. 강요된 자기비판이었다는 것이 오늘의 정설이다. 그는 그 뒤로도 오십사 년을 더 살며 영화 각본과 평전과 회고록을 부지런히 썼지만, 그를 남긴 것은 스물넷에 쓴 짧은 논문 한 편이다. 개념은 살아남았다. 프라하 언어학파를 거쳐 구조주의와 서사학으로 이어졌고, 브레히트가 관객이 극에 몰입하지 못하게 일부러 끊어놓는 소격효과는 사촌 격이다 — 둘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오늘 광고와 디자인과 영화가 일부러 어색한 장치를 심어놓는 것도 이 계보다. 이 개념이 유용한 이유는 예술에만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함께 산 사람의 얼굴, 매일 하는 일, 당연하게 여기는 제도 — 익숙해진 모든 것이 자동화의 대상이다. 낯설게하기는 그것들을 처음 보듯 보는 훈련이기도 하다. 이 아틀라스가 다루는 철학자들이 하는 일도 대체로 그것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익숙해진 것을 우리는 정말로 보고 있는가?
  • 예술은 왜 일부러 어렵게 만드는가?
  • 어려움을 통과해야만 보이는 것이 있는가?
오늘 지나온 길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려보라면, 당신은 어디까지 그릴 수 있습니까?
이 카드에 나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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