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564 ~ 1616 · 런던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발명한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엘리자베스 시대 런던은 인구 20만의 도시였고, 극장은 템스강 남쪽 사창가와 곰 싸움장 옆에 있었다. 귀족부터 서서 보는 1페니 관객까지 한자리에 섞였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뒤집히기를 반복해, 어제의 진리가 오늘의 이단이 되는 것을 사람들이 직접 겪은 시대이기도 하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지구가 중심이 아닐지 모른다는 소식도 퍼지고 있었다. 무엇이 확실한가라는 물음이 학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햄릿』 3막 1장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뜻이 닳아버린 문장이다. 이 대사에서 햄릿이 실제로 따지는 것은 자살이 아니라 계산이다 — 사는 것이 이만큼 괴로운데 왜 다들 계속 사는가. 그가 내놓는 답이 서늘하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아는 괴로움이 모르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우리가 견딘다는 것이다.
형식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대사가 아니라 독백(soliloquy)이다. 무대에 혼자 서서 자기 생각을 소리 내어 따라가는 장면 — 셰익스피어 이전 연극에는 이런 것이 거의 없었다. 인물이 남에게 말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순간, 내면이라는 것이 무대 위에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다.
삶이 만든 철학
그가 남긴 인물들은 하나의 성격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햄릿은 결단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면서 잔인한 장난꾼이고, 맥베스는 살인자이면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며, 리어는 어리석은 아버지이면서 끝내 인간을 새로 배우는 노인이다. 인물이 극 중에서 변한다는 것 — 그리고 그 변화가 사건이 아니라 자기 인식에서 온다는 것이 그의 발명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어왕』은 아무도 구원받지 않고 끝난다. 착한 딸이 죽고, 뉘우친 아버지도 죽는다. 당시 관객이 견디지 못해 18세기에는 결말을 행복하게 고친 판본이 150년 동안 공연됐다. 원본이 돌아온 것은 19세기다.
그는 철학을 쓰지 않았다. 대신 철학이 다루는 문제 — 나는 누구인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 권력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 — 를 사람의 입에 넣어 무대에 올렸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 때, 거기서 무엇이 생겨나는가?
- 아는 괴로움과 모르는 두려움 중 무엇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가?
- 아무도 구원받지 않는 이야기는 왜 필요한가?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스스로에게 하는 말 — 그 말은 남에게 하는 말과 얼마나 다른가요?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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