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1857 ~ 1913 (제네바 강의 1907~1911 · 『일반언어학 강의』 1916) · 제네바
낱말의 뜻은 낱말 안에 없고 다른 낱말과의 차이에 있다 — 구조주의를 연 강의
그가 살았던 시대
19세기의 언어학은 사실상 역사학이었다. 산스크리트와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발견이 학문 전체를 끌고 갔고, 연구란 낱말이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하는 일이었다. 소쉬르는 그 분야의 신동이었다 — 스물한 살에 인도유럽어의 모음 체계를 재구성한 논문을 내놓았고, 거기서 아무도 실물을 본 적 없는 소리 하나가 있었어야 한다고 추론했다. 반세기 뒤 히타이트어 점토판이 발굴되면서 그 소리가 실제로 나왔다. 그런데 정작 그의 이름을 남긴 것은 그가 쓰지 않은 책이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언어에는 차이만 있을 뿐, 적극적인 항은 없다." — 『일반언어학 강의』(1916)
결국 낱말의 뜻이 그 낱말 자체에 들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파랑이 무엇인지는 파랑 안에 있지 않고, 초록이 어디서 끝나고 보라가 어디서 시작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언어마다 색을 자르는 자리가 다르다 — 우리말의 푸르다가 하늘도 덮고 풀도 덮는 것처럼.
소쉬르 자신은 체스에 비유했다. 말의 값은 나무 조각의 재질이나 모양에서 나오지 않는다. 판 위에서 다른 말들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이트를 잃어버려 병뚜껑으로 대신해도 게임은 그대로 굴러간다.
"기호는 자의적이다." — 『일반언어학 강의』
소리와 뜻 사이에 필연적인 연결은 없다는 것. 개를 개라고 부를 이유가 없고 dog나 chien이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서 이상한 결론이 따라 나온다. 자의적인데도 개인은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내일부터 개를 책상이라 부르겠다고 혼자 정할 수는 없다. 규칙이 아무 근거가 없으면서 동시에 강제적인 것 — 소쉬르는 이 이중성을 언어의 핵심으로 봤고, 뒤에 사람들은 법과 예절과 화폐와 유행도 똑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구조주의는 여기서 나온다.
삶이 만든 철학
먼저 정직하게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일반언어학 강의』는 소쉬르가 쓰지 않았다. 1913년 그가 죽은 뒤 제자 두 사람이 학생들의 강의 노트를 모아 엮은 책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정작 그 수업을 직접 듣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가 소쉬르의 사상이라 부르는 것은 여러 사람의 필기를 거쳐 재구성된 것이고, 20세기 후반에 그의 자필 초고가 발견되면서 강의록과 어긋나는 대목들이 드러났다. 한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남는가에 대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책이 세기를 바꿨다. 그는 두 가지를 갈라놓았다. 하나는 랑그와 파롤 — 사회가 공유하는 규칙 체계와 개인이 실제로 내뱉는 말. 다른 하나는 공시와 통시 — 어느 한 시점의 구조를 보는 것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따라가는 것. 그리고 언어학이 다뤄야 할 것은 앞쪽, 즉 지금 이 순간의 체계라고 못 박았다. 백 년 동안 역사만 보던 분야에서 이건 방향 전환이었다.
그 방법이 언어 바깥으로 번져나갔다. 레비스트로스는 친족 제도를, 바르트는 광고와 유행과 요리를, 라캉은 무의식을 언어처럼 — 요소들 사이의 차이가 만드는 체계로 — 읽었다. 반작용도 따라왔다. 데리다는 소쉬르가 문자보다 음성을 앞세운다고 비판했고, 촘스키는 아예 반대 방향으로 갔다. 언어를 사회가 공유하는 체계가 아니라 개인의 머릿속에 갖춰진 능력으로 본 것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낱말의 뜻은 그 낱말 안에 있는가, 다른 낱말과의 관계에 있는가?
- 아무 근거 없는 규칙을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 언어가 다르면 세계를 자르는 자리도 달라지는가?
당신이 쓰는 말에 이름이 없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없는 감정입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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