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1632 ~ 1704 (『통치론』·『인간지성론』 1689) · 런던
동의 없는 권력은 정당하지 않다 — 그리고 마음은 백지로 태어난다는 두 개의 폭탄
그가 살았던 시대
로크의 영국은 한 세기 내내 왕과 의회가 싸운 나라다. 그가 열 살 때 내전이 터졌고, 열여섯에 왕 찰스 1세가 공개 처형됐다. 왕정이 복고됐다가 다시 흔들렸고, 로크는 반역 혐의를 피해 네덜란드로 망명해 가명으로 살았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제임스 2세가 쫓겨나자 이듬해 귀국 — 그 해에 평생의 주저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통치론』은 익명으로 냈고, 죽을 때까지 자기 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왕의 권력을 부정하는 책이었으니까.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인간은 본래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이므로, 누구도 자신의 동의 없이 이 상태에서 끌려 나와 타인의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 없다." — 『통치론』 제2론(1689)
결국 정부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다. 권력은 하늘이 준 것도, 왕의 핏줄에 흐르는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지키려고 빌려준 것이다. 빌려준 것이니 조건이 있다 — 정부가 그 목적을 배반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갈아치울 권리가 있다.
왕권신수설이 통치의 표준 이론이던 시대에 이건 반역의 논리였다. 그리고 87년 뒤, 미국 독립선언서가 이 문장들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는다.
"마음이 아무 글자도 적히지 않은 흰 종이라고 가정해 보자. … 그 모든 것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한마디로 답한다 — 경험에서." — 『인간지성론』(1689)
타고나는 관념은 없다는 것. 신의 관념도, 도덕 법칙도, 수학의 공리도 태어날 때 새겨져 있는 게 아니라 살면서 경험으로 적힌다는 주장이다.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정면으로 겨눈 것이고, 여기서 영국 경험론이 시작된다.
이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백칠십 년 뒤 촘스키가 아이들의 실제 발화를 증거로 데카르트 편에서 되받았고, 오늘의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연구가 여전히 같은 질문 위에서 갈린다 — 백지에 가까운 기계에 경험을 쏟아부으면 마음 비슷한 것이 생기는가.
삶이 만든 철학
그는 서재의 철학자가 아니었다. 의사였고 — 후원자 섀프츠베리 백작의 간 종양 수술을 지휘해 목숨을 구했다 — 무역위원회 관료였고, 정치 음모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다. 명예혁명 뒤에는 화폐 재주조 논쟁에도 관여했다.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그는 국가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으니 신앙을 강제할 권리도 없다고 썼다. 종교전쟁의 세기 끝에서 정교분리의 근거를 놓은 글이다. 다만 그의 관용에는 한계선이 있었다 — 가톨릭과 무신론자는 제외했다. 외국 군주에게 충성한다는 이유, 맹세를 지킬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정직하게 적어야 할 것이 있다.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쓴 그 사람이 노예무역 회사(왕립아프리카회사)에 투자했고, 노예제를 명문화한 캐롤라이나 기본헌법의 작성에 관여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지금도 학계의 논쟁거리다 — 이론의 한계였는지, 사람의 한계였는지. 이 아틀라스는 두 사실을 나란히 적어 둔다. 자유의 이론과 부자유에 얹힌 이익이 한 사람 안에 있었다는 것.
그의 유산은 두 갈래로 갈라져 오늘에 닿는다. 정치 쪽 — 동의·저항권·정교분리는 미국 독립과 근대 헌정의 뼈대가 됐다. 마음 쪽 — 백지설은 루소의 교육론과 촘스키 논쟁을 거쳐, 인간이 얼마나 만들어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살아 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동의하지 않은 권력에 복종할 이유가 있는가?
- 사람은 백지로 태어나는가 —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누가 쓴 것인가?
- 자유를 말한 사람이 부자유에서 이익을 얻었다면, 그 사상은 어떻게 되는가?
지금 당신이 따르는 규칙 가운데, 당신이 동의한 적 있는 것은 몇 개나 됩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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