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 초상
현대의 사유

도나 해러웨이

과학철학
1944 ~ · 샌타크루즈(캘리포니아)
어디에서도 보지 않는 눈은 없다 — 객관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묻는 방법

그가 살았던 시대

1980년대 과학학은 갈림길에 있었다. 한쪽에는 과학이 사회와 무관하게 진리에 이른다는 오래된 상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과학도 결국 권력의 산물일 뿐이라는 강한 구성주의가 있었다. 앞쪽은 실제 연구 현장의 편향을 설명하지 못했고, 뒤쪽은 그렇다면 왜 비행기가 뜨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장류학의 역사를 연구하던 해러웨이는 이 두 자리 어느 쪽에도 서지 않으려 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나는 상황적 지식을 옹호한다. … 오직 부분적인 관점만이 객관적인 시야를 약속한다." — 「상황적 지식들」(1988)
뒤집힌 문장처럼 들린다. 보통 우리는 부분적이라는 말을 객관성의 반대말로 쓴다. 해러웨이의 논지는 이렇다. 아무 데도 서 있지 않은 시선, 이른바 신의 눈을 자처하는 순간 그 시선은 검증할 수 없게 된다. 어디에서 보았는지 밝히지 않았으니 무엇이 가려졌는지도 물을 수 없다. 반대로 나는 여기 서서 이 장비로 이렇게 보았다고 밝히면 그 관점은 따져 볼 수 있는 것이 된다. 책임질 수 있는 시선만이 검증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것만이 객관적이다. 이븐 알하이삼이 자기 자신도 의심하라고 한 것과 이어지는 자리다. 다만 여기서 의심의 대상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위치다.
"우리 시대에, 신화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키메라다. 이론으로 만들어지고 기계로 조립된 잡종, 곧 사이보그다." — 「사이보그 선언」(1985)
사이보그는 기계 인간이 아니라 경계가 무너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 — 근대가 굳게 세워 둔 이 경계들이 실제로는 이미 새고 있다는 것. 이 선언이 과학철학에 남긴 몫은 순수한 범주가 먼저 있고 세계가 거기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관찰이다. 범주는 만들어진 것이고, 누가 만들었는가를 물을 수 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자주 그 물음을 막는 데 쓰인다는 것도.

삶이 만든 철학

해러웨이가 이 논지에 이른 길은 추상적이지 않았다. 그는 영장류학의 역사를 파고들다가 이상한 규칙성을 발견했다. 같은 원숭이 무리를 관찰한 연구들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를 보고했다는 것이다. 1950년대 논문은 수컷 위계와 지배를 중심에 놓았고, 여성 연구자가 늘어난 1970년대 이후의 논문은 암컷의 선택과 혈연 관계와 협력을 중심에 놓았다. 원숭이는 그대로였다.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러니 과학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니 관찰자의 자리를 자료의 일부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두 번째를 택했고, 이것이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이 자리에서 보면 과학사의 오래된 사건들이 다시 읽힌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51번 사진, 우젠슝의 실험, 조슬린 벨 버넬이 처음 잡아낸 펄서 신호 — 누가 무엇을 했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알아볼 자리에 있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하는 사례들이다. 이름이 남는 절차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의 글은 읽기 어렵기로 유명하고, 은유가 논증을 대신한다는 비판도 오래 따라다닌다. 그러나 상황적 지식이라는 개념 하나는 학계 밖으로도 널리 퍼져 나갔다. 누가 이 자료를 모았고 무엇을 셀 것으로 정했는가를 묻는 오늘날의 데이터 윤리 논의는 대체로 이 1988년 논문의 하류에 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어디에도 서 있지 않은 시선이 가능한가 — 그렇다고 주장하면 무엇이 가려지는가?
  • 관찰자가 누구인가는 관찰 결과에 남는가?
  • 자연스럽다는 말은 언제 물음을 막는 데 쓰이는가?
당신이 무언가를 판단할 때 서 있는 자리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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