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1928 ~ (『통사구조』 1957 · 스키너 서평 1959) ·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 MIT
아이는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만든다 — 행동주의를 무너뜨리고 마음을 다시 학문의 대상으로 돌려놓은 논변
그가 살았던 시대
20세기 중반 미국 심리학의 주류는 행동주의였다. 마음속은 들여다볼 수 없으니 학문은 관찰 가능한 행동만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극이 있고 반응이 있고 강화가 있다 — 비둘기든 사람이든 원리는 같다고 봤다. 언어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이는 어른의 말을 따라 하고 칭찬을 받으며 익힌다는 것이 표준 설명이었다. 스키너가 1957년 『언어행동』으로 그 설명을 완성했다. 같은 해에 스물아홉의 촘스키가 『통사구조』를 냈고, 이 년 뒤 그 책에 대한 긴 서평을 썼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무색의 초록 관념들이 맹렬히 잠잔다." — 『통사구조』(1957)
아무 뜻도 없는 문장인데, 영어를 쓰는 사람은 이것을 문법에 맞는 문장으로 느낀다. 낱말 순서를 거꾸로 뒤집은 문장은 똑같이 뜻이 없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비문으로 느낀다.
결국 문장이 맞고 틀린지가 뜻과 별개로 정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문법은 의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들어본 적이 있느냐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 이 문장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따로 있는 체계라는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하는 것이다." — 「지식인의 책무」(1967)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에 쓴 글이다. 그는 이 책무를 특권과 묶었다 —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 몫이 무겁다는 것.
이 자리의 촘스키는 앞의 촘스키와 나눠서 다뤄야 한다. 언어와 마음에 관한 그의 기여는 학계가 대체로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의 정치적 주장들은 지금도 찬반이 크게 갈리는 논쟁의 대상이다. 이 아틀라스는 그 논쟁을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두 활동이 한 사람 안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이 둘을 별개의 일로 여겼다는 것은 기록해 둔다.
삶이 만든 철학
1959년의 서평이 판을 뒤집었다. 그는 스키너의 틀로는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실제로 듣는 말은 중간에 끊기고 문법도 틀린 조각들인데, 아이는 몇 년 만에 그 조각들 안에는 없던 규칙을 뽑아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받은 것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 — 자극의 빈곤이라 부른다. 그러니 아이 안에 미리 갖춰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고, 그것이 보편문법이다.
이 논변이 행동주의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인지혁명의 신호탄이 됐다. 마음속은 다룰 수 없다며 문을 닫았던 학문이 다시 마음속을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의 인지과학과 심리언어학이 그 문으로 들어왔다.
철학사로 보면 아주 오래된 논쟁의 재연이다. 데카르트는 사람이 본유관념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고, 로크는 마음이 백지라고 했다 — 이 아틀라스에 두 사람이 다 있다. 촘스키는 자기가 데카르트 쪽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1966년에는 책 제목을 아예 『데카르트 언어학』으로 달았다. 이백 년 넘게 사변으로만 오가던 논쟁에 그는 아이들의 실제 발화라는 자료를 끌고 들어왔다.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다. 보편문법은 확정된 정설이 아니라 지금도 논쟁 중인 가설이다. 언어는 일반적인 학습 능력과 사회적 상호작용만으로 충분히 설명된다는 사용기반 이론이 맞서 있고, 아마존의 한 언어가 그의 이론에 어긋난다는 보고를 두고도 오랜 공방이 있었다. 다만 그가 던진 물음 — 아이는 어떻게 받은 것보다 많이 아는가 — 은 어느 쪽도 피해 가지 못한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아이는 어떻게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는가?
- 마음속은 학문이 다룰 수 있는 대상인가?
- 사람은 백지로 태어나는가, 무언가를 갖추고 태어나는가?
당신이 배운 적 없는데 할 줄 아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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