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547 ~ 1616 · 마드리드
미친 사람 하나를 세워 세상이 제정신인지 물은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스페인 제국의 전성기가 꺾이던 때다. 무적함대는 1588년에 무너졌고,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은은 물가만 올려놓았다. 기사도는 이미 300년 전에 실물로서 끝났고, 남은 것은 서점에 쌓인 기사 소설뿐이었다. 세르반테스 자신은 레판토 해전에서 왼손을 잃고, 알제에서 5년간 포로로 잡혀 있었으며,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다 회계 문제로 투옥됐다. 『돈키호테』 1부는 그가 쉰여덟에 나왔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으로 본다." — 『돈키호테』를 두고 흔히 하는 말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너무 읽어 자기가 기사라고 믿는 시골 노인이다. 풍차를 거인이라 부르고 여관을 성이라 부르며, 매번 얻어맞는다. 웃긴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 보면 웃음의 방향이 바뀐다 — 그를 비웃던 사람들도 명예와 혈통과 체면이라는, 실체 없는 것을 믿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알고 있고, 나머지는 모른다. 이 소설이 근대 소설의 시작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계를 설명하는 대신, 세계를 보는 시선이 여럿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야기의 구조로 만들었다.
삶이 만든 철학
2부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여행 중에, 자기들이 등장하는 1부를 읽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작가가 쓴 가짜 속편 이야기까지 소설 안으로 들어온다. 등장인물이 자기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에 반응한다 — 400년 뒤 피란델로가 무대에서 한 일을, 세르반테스는 소설에서 먼저 했다.
마지막에 돈키호테는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인정하고, 기사 소설을 저주하고, 죽는다. 산초가 울면서 다시 나가자고 매달리지만 그는 거절한다. 독자 대부분이 이 결말을 슬프게 읽는다 —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복이 아니라 상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무엇을 믿고 사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중, 누가 더 제정신인가?
- 이상을 버리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은 회복인가, 상실인가?
- 이야기가 자기 자신을 이야기 안에 넣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당신이 지금 붙들고 있는 풍차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거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당신은 무엇을 놓게 되나요?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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