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892 ~ 1940 · 베를린
복제가 옮겨오지 못하는 것을 아우라라 부른 사람 — 진보를 등지고 잔해를 보는 역사의 천사
그가 살았던 시대
사진과 영화가 예술의 지위를 흔들던 시기다. 그림은 한 점뿐이지만 사진은 원판에서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고, 영화는 애초에 원본이라는 것이 없다. 동시에 그 기술은 정치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 나치는 대중 집회를 촬영해 신화로 만들었다. 유대계 독일인이자 좌파였던 벤야민은 대학에 자리를 얻지 못했다. 교수 자격 논문이 심사에서 거부된 뒤 평생 정규직 없이 서평과 번역과 라디오 방송으로 먹고살았고, 1933년 이후로는 망명자였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하나가 빠진다 — 예술작품의 지금과 여기, 그것이 있는 자리에서의 유일한 현존."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
그가 아우라라고 부른 것이다. 원본은 만들어진 이래의 시간을 통과해 지금 그 자리에 있고, 복제는 그 시간과 그 자리를 옮겨오지 못한다. 도록으로 백 번 본 그림 앞에 실제로 섰을 때 생기는 그것.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상실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우라는 원래 제단과 성상과 권위에 붙어 있던 것이라, 그것이 시들면 예술이 제의에서 풀려나 처음으로 정치의 자리로 나온다고 봤다. 다만 그 자리는 양쪽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 그가 같은 글에서 파시즘이 정치를 아름답게 꾸미는 방식을 경고한 것이 그래서다.
"야만의 기록이 아닌 문명의 기록은 없다."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
결국 남아 있는 위대한 것들은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얘기다. 대성당도 피라미드도 그렇다. 그런데 역사는 대체로 이긴 쪽이 쓰고, 이긴 쪽의 목록에는 그 밑바닥이 적히지 않는다.
같은 글에 역사의 천사가 나온다. 그는 얼굴을 과거로 향한 채 뒤로 떠밀려 간다. 우리 눈에 사건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자리에서 그는 잔해가 쌓여가는 하나의 파국을 본다. 그를 등 떠밀어 미래로 몰아가는 바람의 이름이 진보다. 역사가 저절로 좋아진다는 믿음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삶이 만든 철학
그의 가장 큰 작업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 19세기 파리의 유리 지붕 상점가를 실마리로 삼아 근대라는 시대 전체를 읽어내려던 시도다. 그는 도서관에 앉아 수천 개의 인용문을 모았고, 그것들을 배열하는 것만으로 한 시대가 스스로 말하게 하려 했다. 그 한복판에 보들레르가 있었다. 군중과 산책자와 상품 진열이 사람의 지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시인이 먼저 본 것을 그가 이론으로 옮기려 한 것이다.
1940년 6월 파리가 함락됐다. 그는 남프랑스로 피했고, 9월에 피레네를 걸어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에 닿았다. 도착한 날 국경이 닫혔으니 프랑스로 돌려보내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그날 밤 숨졌다. 다음 날 일행은 국경을 통과했다. 그가 원고가 든 가방을 들고 있었고 그것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지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살아서 그는 실패한 학자였다. 자리를 얻지 못했고, 책은 팔리지 않았고, 마지막 글들은 서랍과 친구들에게 흩어져 있었다. 그 흩어진 것들이 전쟁 뒤에 모여 20세기 후반의 예술론과 매체론과 역사철학을 다시 짰다. 오늘 원본과 복제, 이미지와 정치, 기억과 역사에 관해 우리가 쓰는 말의 상당 부분이 그가 남긴 것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복제가 옮겨오지 못하는 것이 원본에는 있는가?
- 위대한 문화유산은 누구의 노동 위에 서 있는가?
- 역사는 저절로 나아지는가?
당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하나를 골라 그것이 누구의 시간 위에 서 있는지 물으면, 무엇이 나올까요?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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