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초상
이성의 시대

프랜시스 베이컨

과학철학
1561 ~ 1626 · 런던(잉글랜드)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사람 — 그리고 앎을 가로막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우상이라고 말한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17세기 초 유럽의 대학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하고 있었다. 지식을 얻는 방법은 권위 있는 문헌에서 출발해 삼단논법으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었고, 그 방식으로 천 년 동안 새 지식이 거의 늘지 않았다. 한편 바깥에서는 항해와 인쇄와 화약이 세계를 갈아엎고 있었다 — 셋 다 대학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베이컨은 국왕의 대법관까지 올랐다가 뇌물 수수로 탄핵되어 공직에서 쫓겨났고, 그 뒤 5년 동안 남은 저술을 몰아 썼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견해를 받아들이고 나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들을 끌어모은다. 반대되는 사례가 아무리 많고 무거워도 무시하거나 밀쳐 두거나 구별을 지어 치워 버린다." — 『신기관』 제1권, 종족의 우상
오늘날 확증 편향이라 부르는 것을 400년 전에 적어 놓은 문장이다. 베이컨의 요점은 이것이 게으른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 지성의 기본 설정이라는 데 있다. 똑똑할수록 뒷받침을 더 잘 끌어모은다. 그래서 그의 처방은 "더 열심히 생각하라"가 아니었다. 개인의 머리를 믿지 말고 절차를 만들라는 것이다 — 반대 사례를 일부러 찾아 기록하는 표를 만들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 관찰하고, 결과를 공개하라. 과학이 개인의 총명함이 아니라 제도의 설계인 이유가 여기서 시작된다.
"개미는 모으기만 하고 쓰기만 한다. 거미는 자기 속에서 실을 뽑아 집을 짓는다. 꿀벌은 중간의 길을 택한다 — 뜰과 들의 꽃에서 재료를 모으되, 자기 힘으로 그것을 바꾸고 소화한다." — 『신기관』 제1권 95
개미는 자료만 쌓는 사람, 거미는 자료 없이 이론만 짜내는 사람이다. 베이컨이 겨눈 것은 양쪽 모두다. 오해를 하나 풀어 둘 필요가 있다. 베이컨을 "사실만 잔뜩 모으면 진리가 저절로 떠오른다고 믿은 사람"으로 요약하는 교과서가 많은데, 이 비유가 그 요약을 반박한다. 그는 모으는 것과 짓는 것 둘 다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짓는 일을 모으는 일보다 먼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삶이 만든 철학

베이컨은 실험을 거의 하지 않았고, 동시대의 진짜 성과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수학적 방법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과학사에서 그의 이름이 남은 것은 발견 때문이 아니라 설계 때문이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 그는 살로몬의 집이라는 가상의 연구 기관을 그려 놓았다. 관찰하는 사람, 실험하는 사람, 결과를 정리하는 사람, 그것을 다시 시험하는 사람이 나뉘어 일하고, 성과는 공개된다. 이것은 개인 천재의 그림이 아니라 조직도다. 1660년 세워진 런던 왕립학회의 창립자들은 이 대목을 자기들의 설계도로 읽었다고 밝혔다. 그의 우상론은 지금 읽어도 서늘하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이 공유하는 인지적 왜곡,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성장 배경과 편애, 시장의 우상은 말이 생각을 지배하는 현상, 극장의 우상은 그럴듯한 체계에 압도되는 것이다. 특히 시장의 우상 — 잘못 정의된 낱말 하나가 논쟁 전체를 헛돌게 만든다는 관찰은, 정명을 말한 공자와 언어의 한계를 말한 비트겐슈타인 사이 어딘가에 놓인다. 말년에 그는 냉기가 고기의 부패를 늦추는지 확인하려고 눈을 채운 닭을 실험하다가 폐렴에 걸려 죽었다고 전한다.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그가 남긴 이미지로는 어울리는 죽음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우리는 왜 반대 사례보다 뒷받침하는 사례를 더 잘 찾아내는가?
  • 앎은 개인의 총명함인가, 절차의 설계인가?
  • 잘못 쓰인 말 하나가 생각 전체를 가둘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이 믿는 것 가운데, 반대 증거를 마지막으로 찾아본 것은 언제인가요?
이 카드에 나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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