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828 ~ 1910 · 야스나야 폴랴나
죽음을 알고 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물은 백작
그가 살았던 시대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시대, 같은 나라다. 다만 자리가 다르다. 톨스토이는 대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수백 명의 농노가 딸린 영지를 물려받았다. 크림 전쟁에 장교로 참전해 세바스토폴 포위를 겪었고, 그 경험이 그의 전쟁 서술을 결정했다. 농노 해방 전후로 그는 자기 영지에 농민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세우고 직접 가르쳤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가장 끔찍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판사 이반 일리치는 남들이 옳다고 하는 대로 살았다. 좋은 자리, 적당한 결혼, 알맞은 가구. 그런데 옆구리를 부딪친 뒤 병이 낫지 않고, 죽어가는 몇 달 동안 그는 한 가지 의심에 사로잡힌다 — 내가 살아온 방식이 전부 틀렸다면?
"그래서 가장 끔찍했다"는 문장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의 삶에는 잘못이 없었다.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전부 남이 정해 준 기준이었을 뿐이다. 톨스토이는 실패한 삶이 아니라 성공한 삶이 어떻게 텅 빌 수 있는지를 쓴다.
삶이 만든 철학
『전쟁과 평화』에서 그가 반박한 것은 위인이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나폴레옹은 자기가 전쟁을 지휘한다고 믿지만, 소설은 실제로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누구의 계획대로도 흘러가지 않음을 보여준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수백만 명의 작은 행동들의 합이라는 것.
오십대에 그는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명성도 재산도 가족도 있는데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졌다. 그가 찾은 답은 자기 계급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있었다. 이후 그는 사유재산과 교회와 국가를 부정하고, 직접 밭을 갈고 구두를 지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그를 파문했다.
그의 비폭력 저항 사상은 간디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 —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간디는 남아프리카에 세운 공동체를 톨스토이 농장이라 불렀다. 이 아틀라스에 간디 카드가 있다.
1901년 첫 노벨문학상은 톨스토이가 살아 있는 동안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에게 갔다. 스웨덴 문인 40여 명이 항의 서한을 보냈다. 그는 끝내 받지 못했다.
여든두 살에 그는 집을 나섰다. 재산과 신분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시골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남들이 옳다고 한 대로 산 삶은, 누구의 삶인가?
-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위인인가, 수백만 명의 작은 행동인가?
- 죽음을 정면으로 본 사람만이 삶을 다시 물을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삶에서, 남이 정해 준 기준으로 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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