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1788 ~ 1860 · 프랑크푸르트(독일) — 말년 28년을 산 곳
다른 예술은 세계를 그리지만 음악은 세계와 같은 것을 말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
단치히(현 그단스크)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를 상인으로 키우려 했고, 어머니 요한나는 당대에 그보다 훨씬 유명한 소설가였다. 스물여섯에서 서른 사이에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쓰고 1818년 말에 냈는데(표지에는 1819년), 거의 팔리지 않았다.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열었다가 학생이 없어 접은 일화가 유명하다. 헤겔이 죽고 유럽의 혁명 열기가 식은 1850년대에 들어서야 그의 비관주의가 읽히기 시작했고, 그는 남은 몇 해를 프랑크푸르트에서 뒤늦은 명성을 누리며 살다 죽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음악은 다른 예술처럼 이데아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모사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권 52절
그의 체계에서는 세계에 층이 있다. 맨 아래에 「의지」가 있다 — 목적도 이유도 없이 끝없이 원하고 밀어붙이는 힘이다. 그 위에 그 힘이 굳어져 나타난 형상들이 있고, 맨 위에 우리가 보는 개별 사물들이 있다. 그림은 사물을 그리고, 시는 사람의 행위를 그린다. 즉 다른 예술은 전부 중간층을 거친다.
음악만 그 층을 건너뛴다는 것이 이 문장의 주장이다. 음악에는 그려진 대상이 없다. 슬픈 선율은 어떤 사람의 어떤 슬픔을 그린 것이 아니라 슬픔 그 자체를 그린다. 그래서 가사 없는 기악곡을 듣고도 우리가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고, 그 느낌을 말로 옮기려 하면 늘 부족한 것이다. **음악이 왜 설명 없이 통하는가**에 대한 서양 철학의 가장 유명한 대답이다.
삶이 만든 철학
이 주장이 왜 중요한가. 그때까지 서양에서 기악곡은 성악보다 낮은 것이었다. 가사가 없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니 덜 진지하다는 것이다. 보에티우스 이래 음악은 비례의 학문이었고, 계몽주의는 음악을 「감정의 모방」으로 다뤘다. 어느 쪽이든 음악은 다른 무언가를 대신하는 자리에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그 순서를 뒤집었다. 음악이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결함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본 것이다. 이 한 번의 역전으로 19세기 내내 기악곡이 예술의 정점 자리에 올라간다. 바그너가 이 책을 1854년에 읽고 평생 곁에 두었고, 여러 권을 사서 지인들에게 돌렸다. 니체도 젊은 시절 이 사람에게 사로잡혀 『비극의 탄생』을 썼다가 나중에 등을 돌린다.
다만 정확히 해둘 것이 있다. 쇼펜하우어 본인은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사랑한 것은 로시니와 모차르트였고, 매일 저녁 식사 뒤 플루트를 불었다. 세계는 고통이며 살려는 의지를 부정해야 한다고 쓴 사람이, 그렇게 매일 플루트를 불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음악은 왜 설명 없이 통하는가?
-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예술이 가장 깊을 수 있는가?
- 말로 옮길 수 없다면 그것은 덜 진실한가?
당신을 움직인 음악 한 곡 — 그것이 무엇을 말했는지 말로 옮겨 보십시오. 어디에서 막힙니까?
이 사람이 놓인 물음같은 물음 아래 다른 시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 3개의 질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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