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초상
축의 시대

피타고라스

서양철학
BC 570년경 ~ BC 495년경 (연대 불확실) · 크로톤(현 이탈리아 크로토네)
귀에 좋게 들리는 소리가 왜 하필 간단한 수의 비인가 — 서양이 2,500년을 붙들고 있는 질문

그가 살았던 시대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마흔 무렵 정치 상황을 피해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크로톤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비밀 서약과 식사 규율과 재산 공유로 묶인 공동체를 세웠다. 문제는 그가 글을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전부 후대의 전언이고, 그중 상당수는 학파의 성과를 창시자 이름으로 돌리는 고대의 관습에서 나왔다. 직각삼각형 정리도 바빌로니아와 인도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이며 그가 증명했다는 보장이 없다. 단현금(모노코드)으로 실험했다는 이야기, 대장간에서 망치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는 이야기도 모두 후대에 붙은 전설이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이른바 피타고라스학파는 수의 원리가 만물의 원리라고 여겼다."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권 (본인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증언이다)
왜 하필 수인가. 근거가 된 것이 소리였다. 같은 줄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면 한 옥타브 위 소리가 나고(2:1), 3분의 2로 나누면 완전5도(3:2), 4분의 3으로 나누면 완전4도(4:3)가 난다. 아무 데서나 잘라서는 이 소리가 안 난다. 귀에 좋게 들리는 자리가 간단한 정수비의 자리와 정확히 겹친 것이다. 여기서 비약이 일어난다 — 소리가 수로 되어 있다면 세계도 그럴 것이다. 천체의 운행에도 비례가 있고 그래서 소리가 난다는 「천구의 음악」이 여기서 나온다. 이 발상은 2천 년 뒤 케플러가 행성 궤도에서 화음을 찾게 만들었고, 지금도 물리학이 자연을 수식으로 적으려 할 때 바닥에 깔려 있다.

삶이 만든 철학

이 사람의 자리를 지도에서 크로톤에 찍은 이유가 있다. 그는 사모스에서 태어났지만 사상이 만들어진 곳은 크로톤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것은 학교라기보다 종교 공동체에 가까웠다 — 침묵의 서약이 있었고, 콩을 먹지 않는다는 규율이 있었으며, 영혼이 죽은 뒤 다른 몸으로 옮겨간다고 믿었다. 수학과 음악은 그 공동체의 수행이었지 학문이 아니었다. 소리의 비례를 아는 것이 곧 영혼을 정화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 조화로운 체계가 자기 손으로 깨진다. 한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는 어떤 정수비로도 적을 수 없다. 만물이 수라면 이건 있어서는 안 되는 수였다. 학파가 이 사실을 발설한 사람을 바다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세계는 아름다운 비례로 되어 있다」는 믿음이 그 믿음을 세운 바로 그 도구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다. 음악사에서 이 사람이 남긴 것은 실질적이다. 3:2를 계속 쌓아 음계를 만드는 방식을 피타고라스 음률이라 부르는데, 이 방식으로는 열두 번을 쌓아도 처음 자리에 정확히 돌아오지 못한다. 그 미세한 어긋남이 「피타고라스 콤마」다. 서양 음악은 이 어긋남을 어디에 숨길 것인가를 놓고 이후 2천 년을 씨름했고, 바흐 시대의 조율법 논쟁도 결국 이 문제의 후손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아름다움은 수로 적을 수 있는가?
  • 세계는 수로 되어 있는가, 우리가 수로 읽는 것인가?
  • 체계를 무너뜨리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말해야 하는가?
당신이 "그냥 좋다"고 느끼는 것 — 그 안에 규칙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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