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알하이삼 초상
신앙과 이성

이븐 알하이삼

과학철학
AD 965 ~ 1040 · 카이로(파티마 왕조)
의심하는 것이 방법이 된 첫 순간 — 권위를 실험대 위에 올려놓다

그가 살았던 시대

10세기 카이로와 바그다드는 인류가 아는 지식을 한자리에 모으던 중이었다. 그리스어와 산스크리트와 페르시아어 문헌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광학은 그 번역의 정점에 있었다. 문제는 번역이 끝난 다음이었다 — 모아 놓은 것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알하이삼은 나일강 범람을 막겠다고 호언했다가 실패해 칼리프의 노여움을 샀고, 미친 척하며 십수 년을 가택에 갇혀 지냈다고 전한다. 『광학의 서』는 그 갇힌 시간에 쓰였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진리를 찾는 사람은 옛사람의 글을 믿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의심하고 그 안에 담긴 것에 물음을 던지는 자다. … 자기가 읽은 것을 사방에서 공격해야 하며,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한다." — 『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의문』
결국 권위를 존경하는 방법이 그 권위를 공격해 보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 년 동안 아무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지하게 다뤘다 — 틀렸을 가능성을 계산해 본 것이다. 마지막 구절이 결정적이다. 남만 의심하는 것은 반쪽이고, 자기도 의심 대상에 넣어야 방법이 된다.
"빛은 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눈으로 들어온다." — 『광학의 서』가 실험으로 결론지은 명제
유클리드부터 프톨레마이오스까지 천 년 넘게 이어진 통설은 눈에서 빛이 나간다는 것이었다. 알하이삼은 논쟁으로 이기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 작은 구멍을 뚫어 바깥 풍경이 거꾸로 맺히는 것을 보였고, 밝은 것을 본 뒤 눈이 아픈 현상을 근거로 들었다. 눈이 빛을 쏜다면 왜 눈이 다치겠는가.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판정 방식이다.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실험을 통과하는가로 결정한 것 — 이 절차가 나중에 과학이라 불리게 된다.

삶이 만든 철학

『광학의 서』일곱 권은 빛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방법에 관한 책이다. 그는 각 주장마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시험한다"는 절차를 붙였다 — 장치를 설명하고, 조건을 바꿔 보고, 결과를 적는다. 오늘날 논문의 실험 절차 항목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그가 만든 어두운 방(알빗 알무즐림)은 라틴어로 카메라 옵스쿠라가 되었고, 그 이름이 지금 우리 주머니 속 기계에 남아 있다. 이 책은 12세기 말 라틴어로 옮겨져 로저 베이컨과 케플러에게 닿았다. 케플러의 광학은 알하이삼이 세워 둔 자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유럽의 과학혁명이 시작되기 오백 년 전에, 카이로의 갇힌 방에서 그 방법이 먼저 쓰이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다. 그는 자기 결론도 잠정적으로 두었다. 『의문』의 끝에서 그는 자기가 프톨레마이오스를 대신할 완결된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고 적는다. 답을 못 냈다는 고백이 아니라, 답보다 절차가 먼저라는 선언이다. 틀릴 수 있는 상태로 결론을 내놓는 일 — 천 년 뒤 포퍼가 그것을 과학의 조건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가 던진 질문들

  • 권위 있는 책이 틀렸는지, 우리는 어떻게 확인하는가?
  • 의심의 대상에 자기 자신도 들어가는가?
  •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 다툼은 무엇으로 끝나는가?
당신이 한 번도 시험해 본 적 없이 옳다고 여겨 온 것은 무엇인가요 — 그것을 시험할 방법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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