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아도르노 초상
현대의 사유

테오도어 아도르노

예술
1903 ~ 1969 · 프랑크푸르트(독일) — 나고 자라고 돌아와 죽은 곳
작곡을 배운 철학자 — 그래서 음악을 사회의 진단서로 읽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포도주 상인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에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 일부를 프랑크푸르트에서 듣고 그 자리에서 작곡가에게 자신을 소개했고, 이듬해 빈으로 가 1925~28년 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웠다. 즉 그는 음악에 대해 쓴 철학자가 아니라 **작곡 훈련을 받은 사람이 철학으로 건너간 경우**다. 나치를 피해 영국과 미국으로 망명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쇤베르크와 다시 만났고,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투스 박사』의 음악 부분을 자문했다. 1949년 독일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가르쳤다. 1969년 학생운동과 충돌한 뒤 스위스로 요양을 갔다가 발스 인근 피스프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사람들은 듣지 않으면서 듣는 법을 배웠다." — 「음악의 물신적 성격과 청취의 퇴행」(1938)
라디오와 음반이 음악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만든 시대에 그가 던진 진단이다. 음악이 늘 흐르고 있으면 우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쓰게 된다. 곡 전체의 구조를 따라가는 대신 좋은 부분만 기다리고, 처음 듣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이미 아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다. 그는 이것을 「퇴행」이라 불렀다 — 능력이 없어진 게 아니라 쓰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같은 글에서 그는 이것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고 못박는다. 어떤 곡이 좋아서 자주 들리는 게 아니라, 자주 들리기 때문에 좋아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호가 다시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는 근거가 된다. 여기서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삶이 만든 철학

아도르노는 오늘날 「대중음악을 무시한 속물」로 요약되곤 한다. 그가 재즈에 대해 쓴 글은 실제로 부당하다 — 그는 자신이 유럽에서 들은 상업적 댄스음악을 재즈 전체로 착각했고, 미국 흑인 음악의 역사를 몰랐거나 무시했다. 이 대목은 감싸줄 필요가 없다. 다만 그의 논지를 취향 다툼으로 줄이면 놓치는 것이 있다. 그가 실제로 겨눈 것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음악이 상품이 될 때 듣기라는 행위 자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였다. 이 질문은 스트리밍과 추천 알고리즘의 시대에 오히려 더 날카로워졌다. 30초 안에 후렴이 나오지 않으면 넘겨지기 때문에 곡의 앞부분이 짧아지고, 재생 수가 곧 수익이므로 곡 길이가 줄어드는 현상 — 그가 1938년에 쓴 구조가 그대로다. 그는 평생 곡을 썼다. 베르크에게 배운 대로 무조음악을 썼고, 죽을 때까지 발표한 작품에 작품번호를 붙였다. 그의 음악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대중이 듣지 않는 음악을 쓰면서 대중이 듣는 방식을 비판한 사람 — 이 자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열린 질문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자주 들려서 좋아하게 된 것인가?
  • 음악이 상품이 되면 듣기라는 행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 비판하는 사람이 스스로 그 바깥에 설 수 있는가?
요즘 당신이 가장 자주 듣는 곡 — 그것을 당신이 고른 것입니까, 아니면 고르도록 놓여 있던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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