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1890 ~ 1981 · 서울(구기동)
하루를 평생처럼 산 사람 — 우리말로 철학한 최초의 사상가
그가 살았던 시대
함석헌의 스승이다 — 오산학교에서 만난 사제는 이후 반세기의 동행이 된다.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의 세월, 서양 문명과 기독교가 밀려드는 격류 속에서 다석은 남들과 반대 방향의 질문을 팠다: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아니라, 동양의 눈으로 기독교를 다시 읽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그는 노자와 공자와 불경과 성경을 한 상 위에 놓고 읽은 사람이다 — YMCA 연경반에서 35년간 이어진 그의 강의는 그 회통의 실험실이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곧 한평생이다 — 하루살이(一日一生)." — 다석의 일일일생 사상 (요지)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 하루 저녁 한 끼만 먹고(호 다석多夕이 여기서 왔다), 새벽에 일어나 무릎 꿇고 앉아, 잘 때는 그날 하루를 죽는 것으로 여겼다. 날수 계산도 남달랐다: 몇 년 몇 월이 아니라 태어난 날부터 며칠째인지를 셌다 — 삶을 뭉뚱그린 세월이 아니라 낱낱의 오늘로 산 것이다. 죽음을 매일 미리 살면 오늘이 마지막 날처럼 절실해진다는 것 — 스토아의 메멘토 모리, 붓다의 무상과 같은 자리를, 그는 밥상과 잠자리라는 가장 일상적인 형식으로 만들었다.
삶이 만든 철학
다석의 가장 독창적인 작업은 철학의 언어 그 자체다 — 그는 진리를 한자어나 번역어가 아니라 순우리말 낱말 속에서 캐냈다. "하나님"을 "없이 계신 이"로 — 존재(계심)와 무(없음)를 한 몸에 지닌 분으로 풀었고, 얼굴은 "얼(정신)이 드나드는 골짜기"로, 사람은 "살아가는 이"로 읽었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풀이들은 사실 하이데거가 그리스어 어원을 파고든 것과 같은 작업이다 — 일상어의 껍질 안에 잠든 사유를 깨우는 것. 우리말이 철학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실증한 사람이라, 그를 "한국의 하이데거"가 아니라 그냥 최초의 우리말 철학자라 불러야 한다는 평가가 있다. 사상의 뼈대는 "몸나에서 얼나로"다 — 욕망과 소유에 붙들린 몸의 나를 벗고, 참된 정신의 나(얼나)로 솟나는 것(그의 조어로 "솟남"). 제나(자아)의 죽음이 얼나의 부활이라는 이 구도로 그는 십자가와 부처의 해탈과 유교의 극기복례를 하나의 문법으로 읽었다 — 여러 종교의 회통은 절충이 아니라, 같은 봉우리를 오르는 다른 길들의 확인이었다. 톨스토이와 간디를 사숙했고, 일기 『다석일지』에 수만 편의 명상을 남겼다. 90세 무렵 그가 센 날수는 3만 3천여 일 — 3만 3천 번의 한평생이었다. 씨알 사상으로 광장에 나간 함석헌이 그의 "밖"이라면, 다석은 평생 방 한 칸의 "안"이었다 — 스승은 파고들고 제자는 펼친, 한국 현대 사상의 뿌리와 줄기다.
그가 던진 질문들
- 하루를 한평생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바꾸는가?
- 모국어의 낱말 속에는 어떤 사유가 잠들어 있는가?
- 여러 종교는 서로 다른 산인가, 같은 산의 다른 길인가?
오늘이 당신의 며칠째인지 세어본 적 있나요 — 그리고 오늘 하루가 한평생이라면,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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