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순자

동양철학
BC 310년경 ~ BC 235년경 · 직하학궁(제나라 임치)
"본성은 악하다, 그래서 배움이 있다" — 유가의 현실주의자

그가 살았던 시대

전국 말기 — 진(秦)의 통일이 다가오던, 맹자의 시대보다 한층 더 잔혹해진 세계다. 순자는 제나라의 국립 싱크탱크 직하학궁의 좨주(학장 격)를 세 번이나 지낸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 제자백가의 모든 학파가 모여 논쟁하던 그곳에서 그는 유가의 이상을 현실의 언어로 다시 벼렸다. 그의 문하에서 한비자와 이사(진시황의 승상)가 나왔다는 사실이 그의 위치를 말해준다 — 유가와 법가의 경계선에 선 사람.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 선한 것은 인위(僞)다(人之性惡 其善者僞也)." — 『순자』 성악편
섬뜩하게 들리지만 위(僞)는 "거짓"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人+爲)"이다. 타고난 대로 두면 욕망이 충돌해 싸움이 나니, 선은 자연이 아니라 성취 — 스승과 예(禮)와 공부로 굽은 나무를 펴듯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맹자가 선의 싹을 기르자고 했다면 순자는 굽은 본성을 도지개로 편다고 했다 — 그런데 뒤집어 보면 이건 비관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가장 강한 낙관이다: 길거리의 누구라도 배우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명시했다. 타고남이 아니라 노력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

삶이 만든 철학

『순자』의 첫 편이 「권학(勸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 "학문은 그만둘 수 없다(學不可以已)"로 시작해, 쪽에서 뽑은 푸른 물이 쪽보다 푸르다(청출어람)는 그 유명한 비유가 여기서 나온다. 배움이 본성을 넘어선다는 선언이다. 그의 현실주의는 하늘(天)에서 절정에 이른다 — 하늘은 인격도 의지도 없는 자연의 항상성일 뿐이니,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오는 게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도 비는 올 때 온다"는 것. 일식에 놀라 기도할 시간에 제방을 쌓으라는, 제자백가 중 가장 탈주술적인 자연관이다. 그러나 그는 제사를 폐지하자고 하지 않았다 — 제사는 하늘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산 자의 마음을 빚는 문화 형식(文)이라는 것. 종교 의례의 기능을 이렇게 읽은 것은 2천 년 뒤 사회학의 통찰을 앞당긴 셈이다. 예(禮)도 마찬가지다 — 욕망을 없앨 수 없다면 절도 있게 기르고 나누는 제도가 필요하며, 그 제도가 예라는 것. 공자의 예가 순자에게서 사회 설계의 언어가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의 사후에 온다 — 제자 이사와 한비자의 법가가 진나라의 통일 엔진이 되면서, 유가 정통(맹자 계열)은 순자를 "법가를 낳은 이단"으로 밀어냈고 그는 천 년 넘게 문묘 바깥을 떠돌았다. 그러나 한나라 이후 국가 유교의 실제 골격 — 교육 제도, 예제, 경전 전승(한대 경학의 상당수가 그의 문하 계보다) — 은 맹자보다 순자의 설계에 가깝다. 이름은 지워지고 설계도만 쓰인 건축가 — 그리고 "본성이 악한가 선한가"의 논쟁은, 지금도 심리학과 교육학이 이어받아 싸우는 중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하늘(자연)은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는가?
  • 노력은 타고남을 이길 수 있는가?
지금의 당신을 만든 것은 타고난 본성인가요, 배움과 노력의 인위(僞)인가요 — 비율로 따지면 몇 대 몇일까요?
🗺 축의 시대 지도에서 이 인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