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 ~ 1797 · 런던
"이성에 성별은 없다" — 계몽의 약속을 인류의 절반에게로

그가 살았던 시대

프랑스 혁명의 시대 —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선언이 유럽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인간"에 여성은 없었다. 혁명 프랑스의 인권선언도, 계몽의 교사 루소의 교육론도 여성을 이성의 시민이 아니라 남성을 기쁘게 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몰락한 중산층 가정에서 폭력적인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여성에게 열린 직업(말동무, 가정교사, 교사)을 전전하다 글로 자립한 울스턴크래프트는 — 당대에 극히 드문 "먹고사는 여성 저술가"였다 — 혁명의 논리를 혁명가들 자신에게 겨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나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할 권력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지배할 권력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다." — 『여성의 권리 옹호』
요구가 지배가 아니라 자기결정이라는 것 — 논리는 단순하고 그래서 강력하다. 덕이 이성에서 나온다는 게 계몽의 대전제라면, 그리고 여성에게도 이성이 있다면, 여성을 무지하게 기르는 것은 여성을 부덕하게 만드는 일이다. 여성이 경박하다면 그것은 본성이 아니라 경박하도록 교육받은 결과다 — "새장에 갇힌 새가 나는 법을 모른다고 새를 탓하지 말라"는 논변. 따라서 처방은 단 하나, 같은 교육이다.

삶이 만든 철학

『여성의 권리 옹호』(1792)는 버크의 혁명 비판에 맞선 전작 『인간의 권리 옹호』의 속편 격이다 — 인간의 권리를 논한 논객들이 인류의 절반을 빼놓았다는 것. 그녀는 이론가만이 아니었다. 혁명을 직접 보러 공포정치의 파리로 건너갔고(지인들이 단두대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며 혁명의 이상과 폭력을 함께 기록했다), 스칸디나비아를 홀로 여행하며 쓴 여행기는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랑에서는 두 번 버림받고 두 번 자살을 시도했다 — 이성의 옹호자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 이 모순을 두고 후대는 오래 조롱했지만, 지금 읽으면 오히려 정직함이다: 그녀는 감정을 부정한 적이 없고, 감정이 이성과 함께 교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의 늦은 행복은 짧았다 — 딸을 낳고 열흘 만에 산욕열로 죽었다. 38세. 그 딸이 자라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메리 셸리다. 사후에 남편이 선의로 쓴 솔직한 회고록이 스캔들이 되어 그녀의 이름은 한 세기 동안 "타락한 여자"로 매장되었고 — 참정권 운동가들이 다시 꺼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상이 시대보다 얼마나 앞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를 삶 전체로 보여준 사람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이성에 성별이 있는가?
  • "본성"이라 불리는 것 중 얼마나가 교육의 결과인가?
  • 보편을 말하는 선언은 정말 모두를 포함하는가?
오늘 "원래 그런 것"이라 불리는 것들 중 — 새장을 본성으로 착각한 것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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