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리그베다 — 나사디야 찬가

BC 1500~1200년경 구전 성립 · 펀자브
"모른다"로 끝나는 창조 찬가 — 최초의 위대한 회의

그가 살았던 시대

인더스 문명이 저문 뒤의 펀자브. 유목과 목축의 아리아인들이 천 곡이 넘는 찬가를 문자 없이 암송으로 전승했다 — 리그베다는 책이 아니라 소리였고, 사제 가문들이 음높이 하나까지 통째로 외워 3천 년을 건너왔다. 그 방대한 찬가집 제10권에, 세계의 시작을 노래하다가 돌연 방향을 트는 이상한 찬가 하나가 들어 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그때는 없음도 없었고, 있음도 없었다. (...) 이 창조가 어디서 왔는지 — 신들조차 창조 이후에 왔으니, 누가 알겠는가? 가장 높은 하늘에서 이 세계를 굽어보는 이, 그는 알리라. 아니, 어쩌면 그도 모르리라." — 리그베다 10권 129 나사디야 찬가
종교 경전이 창조를 노래하다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신도 모를 수 있다"로 끝난다. 이게 왜 대단하냐면 — 답을 강요하지 않고 질문을 열어둔 채 끝내는 용기, 그게 3천 년 전 경전 안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확신이 아니라 "모름"을 견디는 것, 철학은 정확히 거기서 시작된다.

삶이 만든 철학

찬가는 태초를 이렇게 더듬는다 — 죽음도 불멸도 없었고, 밤과 낮의 표지도 없었다. "그 하나"가 스스로의 열기로 숨쉬었을 뿐. 그리고 최초의 씨앗은 "욕망(카마)"이었다고, 시인들은 존재의 끈을 비존재 속에서 찾았다고 노래한다. 그러다 마지막 두 연에서 노래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훗날 인도 철학의 우파니샤드가, 불교의 무기(無記, 붓다가 답하지 않은 질문들)가, 그리고 현대 우주론의 "우리는 아직 모른다"까지 — 전부 이 찬가가 열어둔 문으로 걸어 들어온 후손들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
  • 앎에는 한계가 있는가?
  •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가?
당신은 "모른다"고 말해야 할 때,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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