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플라톤

BC 428년경 ~ BC 348년경 · 아테네(아카데메이아)
스승의 죽음을 평생 쓴 사람 — 그리고 대학을 발명한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플라톤은 아테네 최고 명문가의 아들로, 원래 길은 정치였다. 그러나 20대에 두 번의 환멸을 겪는다 — 친척들이 가담한 과두정권(30인 참주)의 공포정치를 보았고, 그것을 무너뜨린 민주정이 하필 가장 의로운 사람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 것을 보았다. 독재도 민주주의도 스승을 지키지 못했다면, 정치 체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 28세의 그가 내린 결론이 서양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동굴 속에 묶인 죄수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믿는다. 풀려난 자가 빛을 보고 돌아와 말해주어도, 그들은 그를 비웃을 것이다 —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 『국가』 7권, 동굴의 비유 (요지)
우리가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 — 를 넘어,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다. 그림자 밖을 본 사람이 돌아오면 환영받는 게 아니라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이론이 아니라 목격담이다. 그림자(통념)를 의심하라고 말하다 죽은 사람을, 플라톤은 실제로 봤다. 동굴의 비유는 철학이면서 동시에 스승의 조사(弔辭)다.

삶이 만든 철학

스승이 죽자 그는 아테네를 떠나 10여 년을 떠돌았다 — 메가라, 이집트, 남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 학파까지. 시라쿠사에서는 철인정치의 꿈을 실험하려다 참주의 노여움을 사 노예로 팔릴 뻔했다(친구가 몸값을 치러 구했다). 40세 무렵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정치 대신 다른 길을 택한다 — 영웅 아카데모스의 숲에 학교를 세운 것이다. 아카데메이아, 이후 900년간 지속되며 모든 대학의 어원이 된 곳. 정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걸었다는 전승은, 의견이 아니라 논증으로 사유하는 훈련장이라는 선언이었다. 그는 스승과 달리 썼다 — 그것도 대화 형식으로만. 30여 편의 대화편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소크라테스다. 답을 정리한 교과서가 아니라 독자를 문답 속으로 끌어들이는 각본을 쓴 것 — 죽은 스승의 질문법을 텍스트 속에 영구 보존한 셈이다. 화이트헤드는 훗날 말했다.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우리가 보는 세계는 실재인가, 그림자인가?
  •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 정의로운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에서, 왜 정의로워야 하는가?
당신이 지금 실재라고 믿는 것들 중 — 동굴 벽의 그림자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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