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사유

백남준

예술
1932 ~ 2006 · 뉴욕(소호)
텔레비전을 사유의 도구로 만든 사람 —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그가 살았던 시대

텔레비전의 시대 — 20세기 후반,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미지 기계가 모든 거실을 점령했다. 방송국이 쏘고 대중은 받는 일방통행의 매체. 서울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떠난 백남준은 도쿄대에서 미학과 음악을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현대음악을 파고들다, 1958년 존 케이지를 만나 궤도가 바뀐다 — 우연과 침묵마저 음악으로 만든 케이지의 정신을 그는 소리 너머로 밀고 나갔다. 피아노를 부수고 넥타이를 자르는 플럭서스 운동의 전위 한복판을 지나, 1963년 부퍼탈의 첫 개인전에서 그는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한다 — 텔레비전 13대를 전시장에 눕히고 세우고 신호를 왜곡해, 시청자를 조작자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예술은 사기다." — 1984년 귀국 인터뷰에서 백남준
반예술 선언이 아니라 예술론이다. 그의 부연은 이랬다 — 예술은 원래 정답이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심각한 정답이 있는 척 떠받드는 것이야말로 속임수라는 것. 고정관념을 부수고 낡은 것과 새것을 뒤섞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는 뜻이다. 굿판의 무당이 신과 사람을 홀려 잇듯이(그는 스스로를 무당에 비유했다), 예술가는 기술과 인간을 홀려 잇는 자라는 것 — 짐짓 무겁게 구는 예술 신전에 대한 유쾌한 폭파 선언.

삶이 만든 철학

1964년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과의 파격 퍼포먼스들로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얻었고, 1965년 소니의 첫 휴대용 비디오카메라(포타팩)가 시판되자마자 구입해 그날 찍은 것을 그날 밤 카페에서 상영했다 — 방송국의 독점물이던 "움직이는 이미지"가 개인의 손에 들어온 순간을 그는 예술의 원년으로 만들었다. "누구나 자기 채널을 갖게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유튜브로 실현됐고, 1974년 록펠러 재단 보고서에서 그가 쓴 말 —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 는 인터넷 시대의 이름이 됐다. 그의 작업은 기술 예찬이 아니라 기술 인간화다: "기술을 증오하려면 먼저 기술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TV 화면을 명상하는 부처와 마주 세우고(〈TV 부처〉 — 붓다가 자기 영상을 영원히 바라보는 설치), 달을 "가장 오래된 TV"라 불렀다. 1984년 새해 첫날, 그는 조지 오웰의 『1984』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위성 생중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쏘아 올린다 — 빅브라더의 감시 도구가 될 거라던 그 전파로 뉴욕과 파리의 예술가들을 실시간으로 잇고 전 세계 수천만 명이 함께 보게 한 것. "오웰 씨, 당신은 절반만 맞았소"라는 인사였다 — 기술은 감시의 도구도 연결의 도구도 될 수 있으며, 어느 쪽이 될지는 인간이 정한다는 것. 1996년 뇌졸중으로 반신이 마비된 뒤에도 휠체어에서 작업을 이어갔고 2006년 마이애미에서 죽었다. 서울 어린이가 피난민이 되어, 도쿄와 뒤셀도르프와 뉴욕을 거쳐 인류의 미디어 감각 자체를 바꿔놓은 생애 — 그의 유골은 서울과 뉴욕과 독일에 나뉘어 묻혔다. 국경 없이 산 사람다운 마지막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기술은 인간을 감시하는가, 연결하는가 — 누가 정하는가?
  •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던 매체를 손에 쥐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예술은 왜 심각해야 하는가 — 심각해야 하는가?
당신 손안의 화면 — 당신은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나요, 아니면 그것에 사로잡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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