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프리드리히 니체

1844 ~ 1900 (집필 활동 1872~1889) · 질스마리아(스위스 알프스)
신의 죽음 이후를 최초로 살아본 사람 — 망치를 든 철학자

그가 살았던 시대

19세기 후반 유럽 — 다윈 이후, 과학의 세기. 교회는 여전히 서 있었지만 교양인들의 내면에서 신은 이미 설명 원리로서 은퇴한 뒤였다. 니체의 진단은 남들보다 한 발 앞선 것이 아니라 한 층 깊은 것이었다: 신의 죽음은 종교만의 사건이 아니라, 신 위에 세워져 있던 모든 것 — 도덕, 진리, 삶의 의미 — 의 지반 붕괴라는 것.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24세에 최연소 교수가 된 이 문헌학 신동은, 건강 붕괴로 34세에 교수직을 버리고 이후 10년을 알프스와 지중해 사이를 떠도는 무국적의 방랑자로 산다 — 여름은 늘 질스마리아였다. "인간과 시간으로부터 6천 피트 위"라고 그가 쓴 곳.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 이 피를 우리는 무엇으로 씻어낼 것인가?" — 『즐거운 학문』 125절, 광인
무신론의 승리 선언으로 흔히 오해되지만, 원문은 정반대로 공포의 장면이다 — 대낮에 등불을 든 광인이 신을 죽인 것은 우리라고 외치는데, 정작 무신론자들이 그를 비웃는다. 니체의 표적은 바로 그 웃는 자들이다: 신을 지웠으면서 신이 보증하던 도덕과 의미는 공짜로 계속 쓰려는 안일함. 지반이 꺼졌는데 그 위의 건물은 그대로 서 있을 거라 믿는 것 — 그 청구서가 곧 도착한다는 경고이고, 그는 그 계산을 자기 홀로 미리 치르려 한 사람이다.

삶이 만든 철학

1881년 8월, 질스마리아 호숫가의 바위 곁에서 그는 영원회귀의 사유에 붙들린다 — 네 삶이 이대로, 모든 고통과 권태까지 무한히 반복된다면? 저주인가. 그런데 만약 "좋다, 한 번 더!"라고 외칠 수 있는 삶이라면 — 그것이 그가 찾던 긍정의 시금석이었다. 신 없는 세계의 답이 저편(내세)이 아니라 이 삶의 무한 긍정이어야 한다는 것. 그 사유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태어났다. 그의 계보학은 망치 든 고고학이다 — 『도덕의 계보』는 선악의 기원을 파헤쳐, "악"이라는 범주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한(르상티망)이 발명한 무기일 수 있음을 보인다. 도덕이 하늘에서 온 게 아니라 역사 속 힘 관계에서 제조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감정할 수 있고 다시 만들 수도 있다 — "모든 가치의 재평가"다. 두통과 구토와 반실명 속에서 그는 열 권을 썼고, 책들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1889년 1월 토리노 광장에서 그는 정신적으로 무너졌고(채찍질당하는 말을 껴안고 쓰러졌다는 전승이 있다), 이후 11년을 어둠 속에 살다 1900년에 죽었다 — 자신의 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사후의 비극이 하나 더 있다: 여동생이 그의 유고를 반유대주의적으로 편집해 나치가 그를 전유하게 만든 것 — 정작 그는 반유대주의를 경멸했고 그 때문에 여동생과 절연했었다. 그의 물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 신도 전통도 답을 주지 않는 시대에, 당신은 당신 삶의 가치를 스스로 세울 수 있는가.

그가 던진 질문들

  • 신 없이 도덕은 가능한가 — 그 근거는 무엇인가?
  • 지금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당신은 긍정할 수 있는가?
  • 우리의 도덕은 발견된 것인가, 발명된 것인가?
지금까지의 당신 삶이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무한히 반복된다면 — "좋다, 한 번 더!"라고 말할 수 있나요? 아니라면, 무엇부터 바꾸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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