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묵자

동양철학
BC 470년경 ~ BC 391년경 · 송나라(현 허난 상추)
차별 없는 사랑과 전쟁 반대 — 성벽을 지키러 달려간 기술자 철학자

그가 살았던 시대

공자 사후, 유가가 지배적 학풍이 되어가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선 최초의 대안이 묵가였다. 묵자는 귀족이 아니라 장인(工) 계층 출신으로 전해진다 — 그의 사상 전체에 노동하는 자의 시선이 배어 있다. 유가의 성대한 장례와 예악을 그는 "산 자의 것을 죽은 자에게 낭비하는 일"이라 비판했고, 운명론을 거부했다. 전국시대로 접어들며 전쟁이 일상이 되자, 그의 집단은 사상 유례없는 형태로 조직된다 — 논쟁하는 학파이자, 성을 지키는 공병대.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천하의 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서로 사랑하지 않음에서 온다. (...)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 하라(視人之國若視其國)." — 『묵자』 겸애편
겸애(兼愛)는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라"는 무리한 요구처럼 들리지만, 그의 논증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 내 가족·내 나라만 챙기는 사랑(별애別愛)의 총합이 곧 전쟁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이익(利)이라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겸애가 옳은 이유는 숭고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이라는 것. 공자의 사랑이 가까운 데서 시작해 퍼져나가는 동심원이라면, 묵자의 사랑은 처음부터 국경을 무시한다 — 2400년 전의 보편주의 선언이다.

삶이 만든 철학

가장 유명한 일화가 그의 철학 전체를 보여준다. 초나라가 공수반이 만든 신형 공성 사다리로 송나라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묵자는 열흘 밤낮을 걸어 초나라에 도착한다 — 발이 부르터 옷을 찢어 싸매면서. 왕 앞에서 그는 공수반과 모의 공성전을 벌인다: 허리띠를 풀어 성을 삼고 나무패로 무기를 삼아, 공수반이 아홉 번 공격하고 묵자가 아홉 번 막아냈다. 공수반이 "당신을 이길 방법을 알지만 말하지 않겠다"고 하자(묵자를 죽이면 된다는 뜻), 묵자가 답했다 — "나를 죽여도 소용없소. 내 제자 300명이 이미 송나라 성벽에서 내 수성 기술로 기다리고 있소." 초왕은 침공을 포기했다. 말로 전쟁을 막은 것이다. 묵가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 거자(鉅子)를 수장으로 한 준군사 조직으로, 방어전에만 참여했고, 검소하게 먹고 입으며 죽음을 무릅썼다. 『묵자』에는 수성전 기술 매뉴얼이 여러 편 실려 있고, 광학·역학·기하학의 명제들("빛은 곧게 나아간다", 지렛대 원리)도 남아 있다 — 중국 고대 과학의 가장 앞선 기록이 반전 평화주의자들의 책 속에 있는 것이다. 논리학(묵변墨辯)도 그들의 유산이다. 그러나 통일 제국이 서고 유가가 국교가 되면서 묵가는 거짓말처럼 소멸했다 — 2천 년간 잊혔다가 청말 서구 충격 속에서 재발견되었다. 이 지도에서 그는 맹자·순자와 나란히 서서 묻는다: 사랑은 가까운 데서 시작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모두를 향해야 하는가.

그가 던진 질문들

  • 사랑은 가까운 데서 시작해야 하는가, 모두를 향해야 하는가?
  • 전쟁은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 옳은 일을 이롭기 때문이라 말하면 천박한가?
당신의 사랑이 닿는 원의 반지름은 어디까지인가요 —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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