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맹자
BC 372년경 ~ BC 289년경 · 추(현 쩌우청)
"백성이 가장 귀하다" — 왕 앞에서 왕을 갈아치울 권리를 말한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전국시대 — 춘추의 예의는 완전히 사라지고 일곱 강대국이 섬멸전을 벌이던 시대다. 성을 함락하면 주민을 파묻었고, 각국은 부국강병책을 파는 사상가들(법가·종횡가)을 경쟁적으로 초빙했다. 공자 사후 백 년, 그의 가르침은 "물정 모르는 이상론"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공자의 손자 자사 계열에서 배운 맹자는 이 냉소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선다 —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그리고 그 본성 위에서만 지속 가능한 국가가 선다고.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국가)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 『맹자』 진심 하
왕정 시대에 대놓고 한 서열 정리다 —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왕은 꼴찌라는 것. 맹자는 여기서 더 나간다. 백성을 해치는 왕은 이미 왕이 아니라 "한 사내(一夫)"일 뿐이므로, 폭군 걸·주를 죽인 것은 시해가 아니라고. 왕이 하늘의 위임을 잃으면 갈아치울 수 있다는 역성혁명론 — 2300년 전에 나온 저항권 이론이다.
삶이 만든 철학
맹자의 논거는 유명한 사고실험이다 — 우물가의 아이.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가는 것을 보면 누구든, 계산할 틈도 없이 가슴이 철렁한다. 아이 부모와 친분을 쌓으려는 것도, 칭찬을 들으려는 것도 아니다. 이 즉각적 안타까움(측은지심)이 모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 성선설의 증거다. 다만 그것은 완성된 선이 아니라 싹(四端)이다 — 물과 볕을 주면 자라고, 짓밟으면 죽는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다. 백성이 굶으면 싹이 자랄 토양 자체가 없으므로, 항산(恒産,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항심(恒心, 안정된 마음)도 없다 — 민생이 도덕의 전제라는 것. 그는 양혜왕, 제선왕 등을 찾아다니며 왕도정치를 유세했지만, 부국강병에 바쁜 왕들에게 "현실성 없다"며 번번이 거절당했다. 은퇴 후 제자들과 문답을 정리한 『맹자』는 훗날 사서(四書)가 되었고, 조선의 선비들이 왕에게 맞설 때 꺼내드는 무기가 되었다 — 정작 왕들은 이 책을 불온서적처럼 여겼다. 명 태조 주원장은 "임금은 가볍다" 대목을 읽고 격노해 맹자를 문묘에서 빼라 명하기도 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국가란 무엇인가 —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폭군을 몰아내는 것은 정당한가?
- 먹고사는 문제와 도덕은 어떤 관계인가?
우물가의 아이를 본 순간의 그 마음 — 당신 안의 그 싹은 지금 자라고 있나요, 밟히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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