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시대

데이비드 흄

서양철학
1711 ~ 1776 · 에든버러
유쾌한 회의주의자 —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고, 인과는 습관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심장 에든버러 — 애덤 스미스와 지질학자 허턴과 의사와 법률가 들이 클럽과 선술집에서 논쟁하던,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도시였다. 흄은 그 한복판의 명랑한 독신자였다. 26세에 완성한 『인간 본성론』은 "인쇄기에서 사산됐다"(그의 표현)지만, 그 안의 폭탄들은 천천히 터졌다 — 무신론자로 찍혀 대학교수 자리를 두 번 거절당한 그는 사서와 외교관과 에세이스트로 살며, 당대에는 철학자보다 『영국사』의 베스트셀러 역사가로 유명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고, 또 노예여야만 한다." — 『인간 본성론』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의 공식 서열 — 이성이 마부, 감정이 말 — 을 정면으로 뒤집은 문장이다. 이성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다는 것: 무엇을 원할지(생명을 구하고 싶다, 정의를 원한다)는 정념이 정하고, 이성은 거기 가는 길을 계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 살인이 나쁘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슴이 거부하기 때문이며, 도덕의 뿌리는 추론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것. 현대 도덕심리학의 실험 결과들이 이 편에 서 있다.

삶이 만든 철학

그의 인과 분석은 철학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몇 페이지다. 당구공 A가 B를 때리고 B가 굴러간다 — 우리는 A가 B를 "움직이게 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관찰한 것은? 접촉, 그리고 뒤이은 운동뿐이다.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힘" 자체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 천 번을 봐도 마찬가지다. 인과란 세계의 시멘트가 아니라, 반복을 겪은 마음이 형성한 기대의 습관이라는 것(알가잘리가 700년 전 같은 곳을 찔렀다 — 다만 그는 신의 직접 개입으로, 흄은 심리 습관으로 결론이 갈렸다). 내일 해가 뜬다는 것조차 논증이 아니라 습관적 믿음이다 — 귀납의 문제로 불리게 될 이 폭탄이, 도그마의 잠을 자던 칸트를 깨운 그 폭탄이다. 정작 흄 본인은 회의로 침울해지면 "친구들과 주사위 놀이를 하고 저녁을 먹으면" 회의가 우스워진다고 썼다 — 철학적 회의와 명랑한 일상의 공존이 그의 답이었다. 종교 비판(기적론, 사후 출간된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으로 "위대한 이교도"라 불린 그가 죽어갈 때, 에든버러가 궁금해한 것은 하나였다 — 무신론자는 어떻게 죽는가. 병상을 찾은 보즈웰에게 그는 소멸 앞에서 아무 불안이 없다고, 태어나기 전에 없었던 것과 같을 뿐이라고 농담 섞어 답했다 — 그 평온한 죽음 자체가 그의 마지막 논증이 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남긴 조사 — "인간의 연약함이 허락하는 한에서, 완전하게 지혜롭고 유덕한 사람에 가장 가까웠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이성과 감정 중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는가?
  •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내일도 해가 뜬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당신의 가장 이성적인 결정을 하나 떠올려보세요 — 그 목적지를 정한 것은 정말 이성이었나요, 아니면 어떤 바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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