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1901 ~ 1989 · 서울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씨알의 철학자, 한국의 간디
그가 살았던 시대
한국 현대사의 고난을 전부 통과한 생애다 —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3·1운동(18세)으로 학교에서 쫓겨났고, 오산학교에서 유영모를 스승으로 만났으며, 일제하에서 계우회 사건 등으로 투옥, 해방 후 북에서 신의주 학생사건 배후로 몰려 소련군에 투옥, 월남 후에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차례로 맞서며 감옥을 드나들었다. 일제와 분단과 독재 — 그 모든 권력이 그를 가뒀지만, 어느 권력도 그의 붓을 멈추지 못했다. 퀘이커 신앙과 노장사상과 성서를 한 몸에 녹인, 분류 불가능한 사상가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함석헌, 『사상계』 1958년 8월호 글의 제목
6·25가 남긴 것을 물은 이 글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 전쟁의 책임을 남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우리 자신이 "생각 없는 민족"이었음을 직시하자는 글이 감옥행이 된 것이, 역설적으로 그 제목의 증명이 됐다. 그의 사상의 뿌리 개념이 씨알이다 — 민중을 뜻하는 순우리말 조어인데, 씨앗의 알맹이라는 뜻이다. 역사의 주인은 왕도 영웅도 지식인도 아니고, 밟혀도 다시 싹트는 이름 없는 씨알들이라는 것. 그리고 씨알이 씨알 노릇을 하는 유일한 길이 스스로 생각하기라는 것 —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본 "생각하지 않음"의 위험을, 그는 같은 시대에 한반도에서 민족 단위로 진단하고 있었다.
삶이 만든 철학
그의 대표작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감옥과 셋방을 전전하며 쓴 역사철학이다 — 한국사를 수난의 연속으로 직시하되, 그 고난을 수치가 아니라 "세계사의 짐을 대신 지는" 소명으로 읽어내는 대담한 전복. 고난의 역사이기에 오히려 평화와 씨알의 사상을 세계에 내놓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스승 유영모에게서 배운 동양 고전 독법으로 그는 노자와 장자를 씨알의 눈으로 다시 읽었고("장자를 모르면 남의 종살이를 면치 못한다"), 퀘이커의 침묵 예배에서 제도 종교 너머의 신앙을 찾았다. 간디는 그의 평생 사표였다 — 비폭력은 약함이 아니라 "혼의 힘"이라는 것을 그는 한국식으로 번역해 냈고, 실제로 간디처럼 살았다: 4·19 때도 유신 때도 광주 이후에도, 노구를 이끌고 시국선언의 맨 앞에 섰고 단식했고 끌려갔다.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들사람(野人)"을 자처한 그는 어떤 당파에도, 어떤 교단에도, 어떤 직함에도 속하지 않았다 — 흰 두루마기와 흰 수염의 그 모습대로, 권력 밖에서 권력을 심문하는 자리를 평생 지켰다. 1989년 죽기 얼마 전까지 그가 낸 잡지 이름이 그의 사상 전체의 요약이다 — 『씨알의 소리』. 씨알이 소리를 내는 것, 이름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말하는 것 — 그것이 그가 본 역사와 철학의 완성이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 영웅인가, 씨알인가?
- 고난의 역사는 수치인가, 소명인가?
- 생각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당신은 지금 — 스스로 생각하는 씨알인가요, 아니면 누군가 대신 생각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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