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 ~ 1519 · 피렌체
그림으로 사유한 사람 — 보는 법을 아는 것이 곧 아는 것

그가 살았던 시대

르네상스 피렌체 — 메디치 가문의 돈과 야심이 고대의 부활과 새로운 인간상을 후원하던 도시다. 중세의 지식이 텍스트(권위 있는 책)의 주석이었다면, 이 시대의 공방(보테가)에서는 다른 앎이 자라고 있었다 — 손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앎. 공증인의 사생아로 태어나 라틴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레오나르도는 대학이 아니라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배웠고, 평생 자신을 "글자 없는 사람(omo sanza lettere)"이라 불렀다. 그 결핍이 무기가 됐다 — 책이 아니라 경험을 스승으로 삼았으니까.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지혜는 경험의 딸이다. (...) 경험을 거치지 않은 확신을 피하라." — 다빈치 노트 (요지)
권위 있는 책이 그렇다고 하니 맞다 — 는 중세식 앎의 정면 부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뭐라 했든, 새가 나는 걸 직접 보고 물이 흐르는 걸 직접 그려본 사람이 더 안다는 것. 그의 해부도가 그 증거다. 당시 의학서의 인체가 갈레노스 텍스트의 삽화였다면, 그는 시신 30여 구를 직접 해부해 심장 판막과 태아를 그렸다 — 그리는 행위 자체가 그의 실험이고 논증이었다.

삶이 만든 철학

남은 노트 7천여 쪽이 그의 진짜 대표작이다 — 거울 글씨로 쓰인 그 페이지들에는 새의 날개와 비행기계, 물의 소용돌이, 웃는 얼굴의 근육, 도시 설계도가 한 페이지에 뒤엉켜 있다. 오늘의 눈에는 "미술과 과학을 넘나든 천재"지만, 그건 우리 시대의 분류를 소급한 것이다 — 그에게 그 둘은 애초에 한 가지 일, 즉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는 일이었다. 회화를 그는 "정신적인 것(cosa mentale)"이라 불렀다 — 손재주가 아니라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인식 활동이라는 뜻이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흐릿한 것(스푸마토)도 해부로 알아낸 사실 — 미소는 입꼬리와 눈가에서 시작되고 시선이 정면을 볼 때 주변부는 흐려진다 — 을 계산한 결과다. 완성작은 회화 20점이 채 안 되고, 비행기계는 날지 못했으며, 계획의 태반은 미완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스스로 보고, 재고, 그려서 알 수 있다"는 그의 확신은 다음 세기 과학혁명이 물려받는다 — 갈릴레오의 망원경 스케치는 다빈치식 앎의 적자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예술과 과학은 정말 다른 일인가?
  • 권위가 말하는 것과 내 경험이 말하는 것이 다를 때,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당신이 "안다"고 여기는 것 중 —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은 얼마나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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