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이븐 시나(아비센나)
AD 980 ~ 1037 · 부하라(현 우즈베키스탄)
유럽이 잊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지킨 사람 — 그리고 "공중에 뜬 인간"
그가 살았던 시대
이슬람 황금기의 중앙아시아. 유럽이 그리스 철학 원전 대부분을 잃어버린 사이,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을 비롯한 이슬람 세계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갈레노스를 아랍어로 번역하고 주석하며 그 유산의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부하라는 사만 왕조의 수도이자 그 지식 네트워크의 동쪽 거점 — 이 도시의 세리(税吏)의 아들로 태어난 신동이 10세에 쿠란을 외우고, 18세에 당대의 전 학문을 독파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왕의 병을 고친 대가로 그가 요구한 것은 금이 아니라 왕실 도서관 출입권이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허공에 떠서 사지도 감각도 서로 닿지 않게 창조된 인간을 상상하라. 그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지만 —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의심 없이 긍정할 것이다." — 『치유의 서』, "공중에 뜬 인간" 사고실험 (요지)
모든 감각을 꺼도 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 "내가 있다"는 자각. 그러니 자아는 몸의 감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보다 먼저라는 논증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보다 600년 앞선 원형인데, 관심사가 다르다 — 데카르트는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찾았고, 이븐 시나는 영혼이 몸과 별개임을 보이려 했다. 같은 실험, 다른 질문.
삶이 만든 철학
그의 삶은 학자의 서재와 거리가 멀었다. 왕조들이 무너지고 세워지는 중앙아시아·페르시아를 평생 떠돌며 — 재상이 되었다가 투옥되고, 변장 탈출하고, 낮에는 군주의 주치의이자 행정가로 일했다. 철학은 밤의 일이었다. 제자들과 밤새 강독하고 포도주를 마시며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게 쓴 것이 철학 백과사전 『치유의 서』와 의학 백과사전 『의학정전』 — 후자는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대학에서 600년간 의학 교과서로 쓰였다. 유럽 의사들이 "왕자 중의 의사"라 부른 사람이 정작 유럽 땅을 밟은 적 없다는 것. 그리고 그가 지킨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븐 루시드를 거쳐 파리의 아퀴나스에게 전해져 스콜라 철학을 일으킨다 — 서양철학사의 사슬에서 이 파란 점이 부하라에 찍혀야 하는 이유다. 필연 존재(신)와 우연 존재(만물)를 가르는 그의 존재론은 이슬람·유대·기독교 신학 모두의 공용 문법이 되었다.
그가 던진 질문들
- "나"는 몸의 감각 없이도 존재하는가?
- 지식의 수호자는 누구였는가 — 문명은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 존재하는 것은 왜 존재하는가 — 필연인가 우연인가?
모든 감각과 기억과 소유를 지운 뒤에도 남는 "당신"은 —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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