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

AD 1126 ~ 1198 · 코르도바(알안달루스)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 신앙과 이성의 화해를 설계한 재판관

그가 살았던 시대

이슬람 스페인의 코르도바 — 한때 수십만 장서의 도서관을 자랑하던 유럽 최대의 지식 도시였지만, 이븐 루시드의 시대에는 북쪽의 기독교 재정복과 근본주의적 알모하드 왕조 사이에 낀 위태로운 땅이었다. 그는 코르도바의 대법관(카디) 가문 출신으로 자신도 법관이자 궁정 의사였다. 당시 이슬람 지성계의 뜨거운 논쟁 — 알가잘리가 『철학자들의 부조리』로 "철학은 신앙을 병들게 한다"고 선고한 뒤였고, 칼리프가 그에게 은밀히 맡긴 과제가 아리스토텔레스 전작의 주석이었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철학은 종교의 짝이자 젖자매다.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 어울리고 서로를 증언한다." — 『결정적 논고』 (요지)
신이 세계를 만들었고 이성도 신이 준 것이라면, 이성으로 세계를 읽어낸 결론(철학)과 계시의 가르침(종교)이 정말로 충돌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겉보기에 충돌한다면 경전을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해석해야 할 신호라는 것 — 게다가 그는 법관답게 이것을 권리가 아니라 의무로 논증했다. 쿠란이 "보라, 성찰하라" 명하니, 논증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 철학은 종교적 의무라고.

삶이 만든 철학

알가잘리의 『철학자들의 부조리』에 그는 『부조리의 부조리』로 응수했다 — 제목부터가 선전포고다. 그러나 그의 진짜 유산은 방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이다. 짧은 요약, 중간 주석, 축자 대주석의 3중 체계로 전작을 해설했고, 이 작업이 어찌나 표준이 되었는지 라틴 유럽에서는 이름조차 필요 없었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자(the Philosopher)"라면 그는 그냥 "주석가(the Commentator)"였다. 역설은 그 다음이다. 말년에 정치 풍향이 바뀌자 그는 이단 혐의로 재판받고 추방됐으며 철학서들이 불태워졌다 — 이슬람 세계에서 그의 합리주의 전통은 위축됐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그의 주석이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번역되어 피레네를 넘는다. 파리 대학은 그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견했고, 아퀴나스는 그와 평생 논쟁하며(『지성 단일성론 반박』) 스콜라 철학을 세웠으며,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지옥이 아닌 림보의 현자들 사이에 앉혔다. 자기 문명에서 꺼진 불이 이웃 문명의 여명이 된 것 — 지식의 국경 없음을 그의 운명 자체가 증언한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신앙과 이성은 정말 충돌하는가?
  • 경전은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하는가, 해석해야 하는가?
  • 한 문명이 버린 사상을 다른 문명이 살릴 때, 그 사상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 안에서 "믿는 것"과 "따져본 것"이 충돌할 때 — 당신은 어느 쪽을 다시 읽어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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