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사유

한나 아렌트

서양철학
1906 ~ 1975 · 뉴욕
악의 평범성 — 생각하지 않음이 어떻게 범죄가 되는지 본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20세기 전체주의의 산증인. 쾨니히스베르크(칸트의 도시다)에서 자란 유대계 독일인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아래서 철학을 배웠고 — 스승 하이데거와의 관계는 그가 나치에 가담하면서 평생의 상처가 된다 — 1933년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풀려나 프랑스로, 1940년 수용소에 갇혔다 탈출해 1941년 뉴욕에 닿았다. 18년을 무국적자로 살았다. "국가 없는 자에게는 인권조차 없더라"는 체험 — 인권은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속해야 주어지더라는 발견("권리들을 가질 권리") — 이 그녀의 정치사상의 출발점이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그 악은 깊이도 악마성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음에서 왔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둘러싼 아렌트의 해명 (요지)
수백만 유대인 수송의 실무 책임자 아이히만을 예루살렘 법정에서 지켜본 그녀의 보고서가 "악의 평범성"이다. 괴물을 예상했는데 나타난 것은 관청 언어로만 말하는, 승진에 목맨 성실한 관료였다는 것 — 그가 유죄인 이유는 증오가 넘쳐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오해 주의: 악이 하찮다는 말도, 아이히만이 무죄라는 말도 아니다(그녀는 사형 판결에 동의했다). 무시무시한 것은 악행에 악마가 필요 없다는 것 — 생각을 시스템에 반납한 평범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삶이 만든 철학

그 보고서는 그녀 인생 최대의 폭풍이 됐다 — 유대인 지도부의 협력 문제까지 정면으로 다루자 평생의 친구들이 절교를 선언했고, "영혼 없는 지식인"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그녀는 한 줄도 철회하지 않았다. 사실에 충실한 것이 공동체에 충성하는 것보다 앞선다는 것 — 그녀에게는 그것이 사유의 최소 조건이었다. 그녀의 정치철학은 그 반대편 극에서 빛난다. 『인간의 조건』(1958)은 인간 활동을 노동(생존의 반복), 작업(사물의 제작), 행위(말과 실천으로 공적 공간에 새로움을 시작하는 것)로 나누고, 인간의 존엄을 행위에서 찾는다 — 인간은 태어남 자체가 새로운 시작이며(탄생성natality), 그래서 아무리 굳은 체제 아래서도 새로 시작할 능력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전체주의 분석가의 결론이 절망이 아니라 시작의 철학이라는 것이 아렌트의 역설적 희망이다. 사유에 대한 그녀의 정의도 여기 잇닿는다 — 생각한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나누는 소리 없는 대화"이고, 그 내면의 둘이 불화하지 않으려는 것이 양심의 뿌리라는 것. 아이히만에게 없던 것이 정확히 그 대화 상대다. 1975년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죽을 때, 타자기에는 유작 『정신의 삶』의 마지막 장 첫 페이지가 걸려 있었다 — 제목만 쳐놓은 채였다. "판단(Judging)."

그가 던진 질문들

  • 악은 괴물의 것인가,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의 것인가?
  • 명령에 따랐다는 것은 면죄가 되는가?
  •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매일 하는 일 중에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채, 그저 시스템이 시켜서 하고 있는 것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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