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토마스 아퀴나스
AD 1225 ~ 1274 · 파리(파리 대학)
신앙과 이성의 대성당을 지은 사람 — 그리고 그것을 "지푸라기"라 부른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
13세기 파리 — 유럽 지성의 수도. 대학이라는 신생 제도가 절정으로 치닫고, 이븐 루시드의 주석과 함께 밀려든 아리스토텔레스 전작이 지적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 없이도 세계를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이 이교도 철학자를 어찌할 것인가 —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 강의를 거듭 금지했지만 학생들은 몰래 읽었다. 금지의 길도, 맹종의 길도 아닌 제3의 길 — 정면으로 통과해 종합하는 길을 택한 것이 아퀴나스였다. 그의 도구 상자 절반은 무슬림(이븐 시나, 이븐 루시드)과 유대인(마이모니데스) 철학자들에게서 왔다.
그의 말, 그리고 쉬운 해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 『신학대전』 1부
신앙과 이성 700년 논쟁에 대한 그의 한 줄 판결이다. 이성(자연)으로 알 수 있는 것과 계시(은총)로만 알 수 있는 것은 층이 다를 뿐 적이 아니며, 위층이 아래층을 부수는 게 아니라 완성한다는 것. 그러니 과학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그의 기준으로 덜된 신앙이고, 신앙을 조롱하는 이성도 자기 한계를 모르는 이성이다. 이 한 문장이 이후 가톨릭 지성 전통의 헌법이 됐다.
삶이 만든 철학
이탈리아 백작 가문의 막내였던 그는 가족의 출세 코스(명문 베네딕토회 수도원장)를 걷어차고 신생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회에 들어갔다 — 격노한 형들이 그를 납치해 성에 1년 넘게 감금했지만 꺾지 못했다. 파리 유학 시절 과묵하고 거구여서 "벙어리 황소"라 놀림받던 그를 두고 스승 알베르투스는 말했다. "이 황소의 울음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 예언대로였다 — 『신학대전』은 수천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각 질문마다 반대 논거를 먼저, 그것도 최대한 강하게 제시한 뒤 답하는 구성 — 반대자를 검열하는 게 아니라 반대자의 최선의 논변과 씨름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었다(신의 존재를 다루는 항목에서 무신론의 논거를 그토록 강력하게 정리한 것도 그 자신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은 뜻밖이다. 1273년 12월 6일, 미사 중 무언가를 체험한 그는 집필을 완전히 멈췄다. 이유를 묻는 비서에게 그가 남긴 말 — "내가 본 것에 비하면, 내가 쓴 모든 것이 지푸라기처럼 보인다." 『신학대전』은 미완으로 남았고 그는 몇 달 뒤 죽었다. 이성의 대성당을 끝까지 지어 올린 사람이, 마지막에 이성의 끝을 고백한 것 — 그 미완성까지가 그의 철학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
-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가?
- 반대자의 논변을 가장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왜 중요한가?
- 이성이 닿을 수 있는 곳의 끝은 어디인가?
당신이 반대하는 입장을 — 그 지지자보다 더 강하게 논증해줄 수 있나요? 해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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